내일의 눈

'주가조작' 패가망신시킬 의지 있나

2023-09-26 11:08:46 게재
금융당국이 주가조작 엄단을 위해 최근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대응체계 개선방안'을 발표했지만 내용은 기대 이하다. 라덕연 사태를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지난 3개월 동안 대책을 논의해 내놓은 결과물은 '협업 강화'에 그쳤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사건을 총괄하는 사실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거래소의 협업을 강화하겠다는 등의 내용을 놓고 보면, 자본시장 조사의 주도권을 확실히 금융위가 갖는 형태의 개선안이다.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의 균형감 있는 대책이 아니라 금융위의 권한 강화로 비치는 것이다.

자본시장 조사의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된 금감원에 현장조사권과 영치권(제출된 물건·자료의 보관 권리)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동안 주요 대책으로 거론됐다. 자본시장의 최일선에서 주가조작 등을 단속하는 금감원이 현장조사도 나가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대책이 개선안에서 빠지고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것은 금융당국의 주가조작 근절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또한 증거인멸을 막기 위한 영치권과 디지털포렌식도 보강돼야 할 조사수단이다.

이번 개선안은 강제조사권을 가진 금융위와의 협업을 통해 금감원이 맡는 사건에도 이를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금감원에 독자적 권한을 주기보다는 금융위의 통제 하에 필요성 여부를 따지는 방식이다. 당장 금감원 내부에서는 "금융위와 공동조사를 하면 사실상 금감원이 일은 다하고 생색은 금융위가 내게 될 것"이라며 "절차만 복잡해지고 조사 효율성은 떨어질 수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금융위가 10년 전 자본시장조사단을 발족한 이후 불공정거래 조사 주도권을 놓고 금융위와 금감원의 힘겨루기는 계속돼왔다.

국민들은 금융위에서 조사를 하는지 금감원에서 조사를 하는지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금융당국의 신속하고 강경한 대응으로 주가조작 세력이 정말 '패가망신'하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금융위와 금감원에 각각 별개의 불공정거래 조사조직을 두겠다고 한다면 동일한 권한을 부여해 차이를 없애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두 조직을 합쳐서 조사의 신속성을 높이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협업 강화'라는 다소 모호한 불공정거래 대응체계 개선방안이 실행력 있게 집행될 것이라고 장담할 전문가들은 별로 없다.

내년 1월부터 부당이득에 대해 2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하고 부당이득 산정 기준을 법규화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된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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