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1조원 모금 못할 이유 없다

2023-10-04 10:57:33 게재
추석연휴 귀향·귀성길 유난히 눈에 띈 현수막 중 하나가 고향사랑기부제 홍보다. 지자체 입장에서 제도를 홍보하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기대 이하로 저조한 모금 실적 탓에 홍보가 그만큼 절실했을 것이다.

실제 243개 지방자치단체가 모금한 고향사랑기부금은 7월 말 기준 245억원에 불과하다. 지자체 평균 1억원쯤 모금한 셈이다. 어려운 지방재정 활성화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제도 도입 목적을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금액이다. 모금액이 얼마나 적은지는 정치후원금과 비교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지난해 국회의원 정치후원금은 585억7900만원이다. 국회의원 1인당 평균 모금액이 1억9526만원쯤 된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정치후원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기부금의 30%에 해당하는 답례품이 최대 경쟁력이다. 뿐만 아니라 지자체는 국회에 덧씌워진 이른바 '정치혐오'에서도 자유롭다.

불리한 점이 있다면 올해가 제도 시행 첫해라는 점이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자치단체장,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스타들이 홍보에 참여했다. 이번 추석에도 지자체마다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쳤다. 이 정도면 제도 시행 첫해라는 한계를 충분히 넘고도 남을 물량공세다. 주소지 지자체에는 기부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지만 이 역시 현재 살고 있는 기초·광역 지자체를 제외한 241개의 대체재가 있다는 점에서 제약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 국민들이 기부에 인색하다 말할 수도 없다. 비록 국민소득 규모에 비해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해 민간기부금이 15조6000억원에 달한다. 명분만 뚜렷하다면 얼마든지 기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우리나라 근로소득자가 1800만명이 넘는다. 홍보만 잘 하고 절차만 간단해지면 10만원 내고 13만원을 돌려받는데 누가 참여하지 않겠나. 이들이 10만원씩만 기부해도 1조8000억원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지난해 우리와 비슷한 고향납세로 8조7100억원을 모금했다.

문제는 제도의 한계다. 지나친 홍보 규제, 불편한 기부 절차, 불분명한 기금 사용처, 중앙집권적 제도운영이 발목을 잡고 있다. 이미 국회에는 시행 1년도 안된 고향사랑기부금법을 손보려는 개정안이 16개나 발의돼 있다. 개정안을 준비 중인 국회의원이 예닐곱명쯤 더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될 가능성도 높다. 이쯤 되면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서둘러 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시행 초기라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기 어렵다. 이번 국감이 제도 개선의 기회일지 모른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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