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ESG 공시 의무화, 늦춰봐야 실익없다

2023-10-17 11:09:05 게재

16일 금융위원회가 2025년 도입 예정이던 ESG 공시 의무화 일정을 2026년 이후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경제인협회 등이 ESG 공시 의무화를 3~4년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소식이 들린 가운데 나온 결정이라 금융당국이 재계에 굴복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1월, 금융위원회는 ESG 공시 의무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자율 공시를 활성화한 뒤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의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2030년부터는 전체 코스피 기업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었다.

당시에도 ESG 정보공개 의무화 시기가 너무 늦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런데 2년 9개월이 지난 지금 와서 ESG 공시 의무화 계획을 장기간 미루겠다고 한다. 이게 우리 기업에게 도움이 된다고 보는지 의문이다.

글로벌 ESG 공시 기준은 이미 확정됐고 국제사회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국제재무보고기준(IFRS) 재단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올해 6월 확정한 공시 기준을 2025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도 자체 ESG 공시 기준인 유럽지속가능성공시기준(ESRS)을 2025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이달 7일 기업의 기후변화대응 정보공개를 의무화하는 'SB253' 'SB261' 법안을 통과시켰다. 'SB253'은 캘리포니아에 소재한 연 매출 10억달러(1조3400억원) 이상 기업에 스코프 3(공급망 전체 배출량)을 포함한 온실가스배출 정보공개를 요구하며, 'SB261'은 연 매출 5억달러(6700억원) 이상 기업에 기후변화로 인한 재무리스크 공개와 대응계획 수립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증권거래위원회(SEC)에도 영향을 미쳐 미국 내 법제화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수출기업들은 이미 해외 자본시장과 공급망으로부터 다양한 ESG 정보를 요구받고 있다. ESG 공시 의무화 로드맵이 발표된 후 국내 이해관계자들도 글로벌 ESG 정책과 법안 마련 과정을 살피며 공시를 준비해왔다. 2025년 공시 의무화 대상 기업은 대략 190개로 추정된다. 이들은 대부분 ESG 공시 대응 체계를 갖춰놓을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국내 ESG 공시 의무화를 1~2년 늦춰봐야 별다른 실익이 없다. 오히려 공시 의무화 준비가 늦을수록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의 경쟁력은 더 약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자본시장에서 해외투자자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 빠르게 변하는 국제사회와 이상기후는 우리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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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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