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평화의 길

2023-10-23 11:26:09 게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확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대규모 민간인 피해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 진입을 기정사실화하며 연일 공습을 확대하고 있다. 민간인 피해도 급증해 22일 현재 양측이 밝힌 희생자는 이스라엘 1400명, 가자지구 4600명을 넘었다. 이중 상당수는 어린아이들이다.

헤즈볼라와 이란은 이스라엘의 가자 진입시 '또 다른 전선이 열릴 것'이라며 개입의지를 밝혔다. 미국은 항공모함 2개 전단을 배치해 헤즈볼라 등의 참전을 억제하고 있지만, 가자 진입 이후에도 억지력을 발휘할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어둠이 깊어지면 새벽이 가까웠다고 하던가. 가자지구를 둘러싼 위기가 심화되며 이 지역의 평화정착을 위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동안 진척을 보이지 않던 '두 국가 해법'이 다시 등장했다.

'두 국가 해법' 무산시킨 네타냐후와 하마스의 적대적 공존

두 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1967년 이전의 경계선을 기준으로 각각 별도의 국가로 공존하자는 구상이다. 이스라엘이 건립된 만큼 가자와 서안지구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두 국가 해법은 1993년 미국 중재 아래 이스라엘 라빈 총리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아라파트 의장이 오슬로협정을 맺고, 서로를 인정하고 팔레스타인 국가건설을 통한 공존을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오슬로협정은 팔레스타인 국가건설로 이어지지 못했다.

오슬로협정 좌초는 난민 귀환, 국경 획정, 정착촌 문제, 동예루살렘 영유권 등 핵심쟁점에 합의가 어려웠던 점도 있지만 이스라엘 극우파인 네타냐후와 팔레스타인 극단세력인 하마스 책임도 크다. 1995년 라빈 총리가 광신자에 의해 피살된 후 평화협상은 지지부진해졌다. 극우파 네타냐후는 이듬해 총선에서 오슬로협정 반대를 내걸고 승리하자, 평화공존을 걷어차고 정착촌 건설 등 팔레스타인인 추방정책을 추진했다. 이스라엘 존재를 부정하는 반시온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하마스도 자살폭탄테러 등 극단적 저항으로 오슬로협정 무산을 가속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슬로협정 불씨를 되살린 것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이다. 하마스의 잔인한 이스라엘인 살육과 네타냐후 극우정부의 극단적인 가자지구 봉쇄와 보복전이 벌어지자 전세계가 나서 평화정착을 외치기 시작했다.

두 국가 해법을 가장 먼저 언급한 이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다. 푸틴은 하마스침공 4일 후인 11일 "이스라엘은 스스로 방어할 권리가 있지만 팔레스타인은 독립해야 한다"며 즉각적 휴전과 협상을 주장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이스라엘 방문에 앞서 두 국가 해법을 거론했다. 바이든은 15일 CBS에 출연해 "하마스가 완전히 제거돼야 하지만 팔레스타인 국가로 가는 길이 필요하다"며 "두 국가 해법은 수십년간 미국의 정책"이라고 말했다. 중국 시진핑 주석도 19일 이집트 총리와 만나 "가능한 한 빨리 휴전하는 게 급선무"라며 두 국가 방안이 근본적 해법이라고 밝혔다. 인도 외무부는 12일 성명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국제인도법 준수와 팔레스타인 국가를 향한 협상을 촉구했다.

아프리카연합과 아랍국가연맹은 15일 공동성명에서 '가자지구에서 적대행위 즉각 중단'과 '두 국가 비전에 기초한 정치적 해결책이 이 지역 평화와 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21일 이집트 평화회의에서 많은 나라가 평화정착을 외치지만 이스라엘의 불참과 미국의 침묵으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스라엘 3단계 군사작전, 문제 해결보다 상황만 악화시킬 우려

이스라엘 갈란트 국방장관은 20일 의회 보고에서 가자지구 군사작전을 3단계라고 밝혔다. 공습을 통한 군사인프라 파괴→가자 진입을 통한 하마스 파괴→하마스를 대신할 새통치기구 수립이 그것이다. 공습을 통한 군사인프라 파괴는 하마스가 민간시설과 연계해 활동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민간인 피해를 낳고 있다. 또 하마스가 가자지구에 500km 땅굴을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단기간에 이를 제거하기도 쉽지 않다. 하마스 파괴도 마찬가지다. 설령 하마스를 대부분 파괴해도 현 적대정책이 이어지는 한 제2, 제3의 하마스가 나올 수밖에 없다. 가자지구 통치권 교체도 매우 어렵고, 아랍 각국 정부의 동의를 얻어내기는 더 어려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은 문제 해결보다 상황만 악화시킬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얼마나 많은 희생이 더 이어져야 두 국가 해법이 실현될 수 있을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장병호 외교통일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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