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이념논쟁과 민생 올인

2023-10-24 10:51:32 게재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을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민생 현장으로 더 들어가서 챙겨야 한다. 이념논쟁을 멈추고 민생에 집중하자."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당부한 말이라고 한다. 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뒤 닷새 만에 나온 대통령실의 첫 '자성의 목소리'다.

민생에 집중하자는 말은 백번 옳다. 경제부처 취재를 담당하는 기자로서는 더 반가운 일이다. 앞으로는 오직 민생과 정책에 올인하는 대통령과 정부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한편에는 걱정이 더 앞선다. 진심이 담긴 발언이라기보다 선거 참패를 수습하기 위해 한번 해보는 말은 아닐까 해서다.

자성이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진단과 자기반성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 발언을 뜯어보면 여전히 '남 탓'이 앞선 것 같다. 사실 이념논쟁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서 비롯되거나 격화됐다. 윤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자유와 반공주의'를 강조했다. 심지어 야당이나 야당 지지자를 '친공산주의 세력'으로 몰아붙였다. 뉴스를 들으며 "다시 민주화 이전 시대로 돌아간 것인가"라며 고개를 갸웃거린 게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 만큼 당연히 "이념논쟁을 멈추고 민생에 집중하자"가 아니라 "(나는) 이념논쟁을 멈출 테니 (여야 모두) 민생에 집중하자"고 말해야 정상이다. 그동안 소모적 이념논쟁에 집착해서 송구하다는 말까지 붙였다면 더 좋았겠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결과도 이념논쟁과 독선에 등을 돌린 표심의 반영일 것이다. 대통령은 이 일부터 국민에게 솔직하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윤 대통령의 '민생 집중' 발언의 진의를 의심케 하는 일은 또 있다. 같은 시기 육군이 육군사관학교 안에 있는 '독립전쟁 영웅실'을 철거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독립전쟁 영웅실은 홍범도·김좌진 장군 등 항일 독립운동을 기리는 공간이다.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은 최근 '이념논란'의 핵심이었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이념논쟁 중단'을 얘기하고 있는데 군은 "나는 모르겠다"는 식이다. 정상적인 군통수권자와 군의 관계를 유추해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대통령 직권으로 이 문제부터 정상화시키도록 조치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어려운 문제도 아닐 것이다.

국민들은 갈수록 살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세계적 경기침체로 물가와 금리가 치솟으면서 실질소득은 계속 퇴보하고 있다. 내년 경제도 올해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라는 게 국내외 연구기관의 분석이다. 이런 문제부터 차근차근 대비하고 해결하는 진짜 '민생정부'를 기대한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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