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분초시대에 유권자로 살아가기

2023-11-06 10:53:06 게재
2008년부터 이듬해 우리 사회를 관통할 키워드를 '트렌드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내놓는다. 신조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년 소비전망엔 분초사회, 호모 프롬프트, 육각형 인간, 도파밍(도파민+파밍), 리퀴드폴리탄 등 낯선 언어가 담겼다. 필자들은 그러면서 인간의 역할과 역량에 주목해야 한다며 '천천히 읽기'를 권한다.

억지스럽지만 내년 전망에 정치권을 대입해 본다면? 내년 4월 총선에 나설 예비후보자 등록이 12월 12일인데 선거구는 어떻게 할지, 비례대표는 어떻게 뽑을지 아직 미정이다. '시간은 돈이다'를 넘어 '시성비'를 따지는 세상이지만 여야는 닥쳐야 움직인다. 출발부터 무리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반성한다는 세력이 있었지만 한달이 채 안돼 결국은 익숙한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지역의 불균형 발전과 지역소멸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관계인구 중심의 유연한 도시 '리퀴드폴리탄'이 제안되고 있는데, 집권여당은 서울주변 경기도 지자체를 서울로 편입시키자고 나섰다. 유연해도 너무 유연한 것 아닌가.

따지고 보면 정치권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뽑은 대리인이 지역구를 잘 챙기고, 중앙정계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며, 계파에 휘둘리지 않고 정치쇄신을 주도하길 바란다. 외모·학력·자산·직업·집안·성격까지 완벽한 '육각형 인간'이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존재를 그려놓고 실제로는 한참 못미치는 대리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심리 아닌가 자책한다.

그럼에도 후보자를 고르는 행위 자체는 유권자의 권리다. 행정부를 야무지게 견제하고, 지역이익을 대변해 정의로운 갑질로 유권자의 '도파민' 생성을 돕는 인물을 골라야 한다. 국회와 정당이 갖는 힘은 상상 이상으로 세다. 국회가 갖는 제도(법)와 예산의 힘이기도 하다. 더구나 이들은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는다. "헌법 위에 국회법"이라는 표현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잘 변하지 않는 정치권도 선거때 만큼은 다르다. 4년을 번 국회의원은 딱딱하지만 입구에 선 후보자와 정당은 말랑말랑 해진다. 육각형 후보를 찾지 못했다면 유권자 지지자를 부끄럽게 만들거나 마지못해 찍은 사람을 돌아서게 만든 이들을 냉정하게 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절박한 쪽을 자극하면 변화가 나타날 수도 있다. 정당 경선이든, 선거의 투표든 적극 참여해 도파밍의 흥미를 추구하는 건 어떤가.

제 아무리 힘센 정치권이라 해도 원천은 유권자에서 출발한다. AI에게 뭘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화룡점정의 열쇠는 유권자가 쥐고 있다는 말이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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