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글로벌 자원공급망 공동진출할 듯

2023-11-15 10:55:44 게재

양국 정상, 17일 스탠퍼드선언 추진 … "수소·암모니아 등 민관이 공동으로 출자"

한국과 일본이 미래 에너지 자원의 확보를 위해 글로벌 차원에서 공동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양자컴퓨터 기술 등 첨단분야 연구개발도 공동으로 추진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중인 17일 양국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협력에 관해 합의한다. 전문가들도 양국 정상의 경제분야 협력 합의에 대해 긍정적이다.

한일 정책금융기관 공동출자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최근 양국이 글로벌 에너지시장에 공동진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신문은 두 정상이 17일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공동 강연을 가진 뒤 두 나라 경제협력에 대한 구상을 밝힐 것이라고 보도했다. 두 정상은 특히 미래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수소와 암모니아의 공급망 확보를 위해 함께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양국은 주력산업인 철강과 전자, 자동차, 화학 등의 산업에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지만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따라서 주로 천연가스를 원료로 사용하는 수소와 암모니아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양국은 산유국에 공동 진출하는 방안을 모색할 전망이다.

닛케이는 "양국이 공동으로 자원을 조달하면 가격교섭력을 높이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호 '윈-윈'이 될 것"이라며 "두 정상이 '수소·암모니아 글로벌 밸류체인' 구상을 밝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선 정책금융기관과 에너지 공기업이 나설 것으로 보인다. 양국 공공기관이 공동출자를 통해 중동과 아세안, 미국 등 제3국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한국수출입은행과 일본국제협력은행(JBIC) 등 정책금융기관이 공동출자법인을 만들고, 에너지 관련 기업이 참여해 자원 발굴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 2030년까지 안정적인 해상운송망 정비를 위해 관련 업계가 참여할 가능성도 있다.

두 정상은 또 이번 합의를 통해 양자기술에서도 상호협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표준과학연구원(KRISS)과 일본 산업기술총합연구소가 양해각서를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와 일본 도쿄대, 미국 시카고대의 연계를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편 한일 또는 한미일 경제협력은 이미 3국 정상회담에서 원칙적 합의를 본 사안이다. 한미일 3국 정상은 올해 8월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안전보장 등에 대한 협력을 담은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당시 3국은 첨단기술과 공급망,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를 위해 각국 산업과 통상 장관이 참여하는 '한미일 경제안보대화'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 닛케이는 17일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 "한국과 일본의 정권이 바뀌더라도 되돌릴 수 없는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윤 대통령 취임이후 한일관계가 빠르게 개선되면서 양국간 경제협력이 가시화하고 있다"며 "특히 에너지분야에서 수소와 암모니아 도입 및 생산에 대한 공동협력에 공감대가 형성돼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논의중이어서 조만간 구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는 "한일 양국이 국교정상화 이후 자금협력, 기술협력, 통화협력 등의 단계를 거쳐 경제협력을 해왔다"며 "경제 안보시대를 맞아 민관협력의 틀을 구현하는 계기를 마련한 고무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발빠르게 나서는 민간기업

양국 민간 기업간 연계는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닛케이는 "한국 롯데케미칼과 일본 미쓰비시상사, 독일 RWE 등이 미국에서 공동으로 연료 암모니아를 생산하고, 2029년부터 이를 조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10월 미쓰비시상사와 청정수소·암모니아 사업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 회사는 일본의 이토추상사와 스미토모상사 등과도 손잡고 미래 에너지 자원 확보에 전략적인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롯데케미칼과 미쓰비시상사는 지난해 10월 '청정수소·암모니아 사업협력 MOU 체결식'을 가졌다. 사진 롯데케미칼 제공


롯데케미칼은 2030년까지 총 6조원을 투자해 120만톤 규모의 청정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통해 매출 5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하기도 했다. 황진구 롯데케미칼 수소에너지사업단장은 당시 "미쓰비시상사와 포괄적 협력을 통해 양국의 청정수소·암모니아 수요 대응 및 공급망 구축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며 "생산과 운송, 저장 및 시장 공급에 이르는 밸류체인을 구체화해 미래 수소경제사회를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GS에너지는 올해 8월 일본 미쓰이물산 등과 함께 별도 법인을 만들었다. 두 회사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의 개발계획에 동참할 방침이며, 이를 통해 연간 100만톤의 암모니아를 생산해 2026년 이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앞서 GS에너지는 2021년 미쓰이물산과 각각 지분 10%씩 출자해 ADNOC가 주도하는 블루암모니아 생산플랜트 개발 사업에 참여했다.

한일 정상이 정부간 협력에 적극 나서는 가운데 민간 기업 차원에서는 이미 자원개발과 인프라 투자 등을 중심으로 협력을 지속해 왔다. 예컨대 포스코와 국민연금 등이 출자한 한국측 특수목적회사(SPC)와 일본제철·JFE스틸 등이 참여한 일본측 SPC는 2011년 브라질 광산기업인 CBMM에 공동출자해 희소금속인 니오브 확보에 나선 경험이 있다.

이밖에 2011년 인도네시아 화력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일본 마루베니상사가 이끄는 컨소시엄에 두산에너빌리티와 한국전력기술 등이 참여했다. 인도와 알제리 등지에서도 양국의 민간기업이 인프라 투자와 자원개발에 공동으로 나선 경험이 있다. 대외경제협력연구원 등에 따르면, 2008년 이후 한일 양국의 민관이 제3국에서 벌인 에너지 및 자원 개발협력은 70여건에 이른다.

하지만 한일 기업간 경제협력은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불거진 양국간 정치적 갈등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판결 △2019년 아베정권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등이 겹치면서 사실상 중단되는 진통을 겪었다. 2012년 이후 한일FTA 협상이 좌초하고 통화스와프도 종료됐다. 사실상 한일 양국 정부차원의 협력이 전면 중단됐다.

산업구조 경합관계로 제한적 전망도

두 나라 정상간 경제협력 합의가 이뤄지면 정부와 공기업, 대학을 중심으로 최소한 미래 에너지 자원의 공동개발·확보·조달, 첨단기술과 관련한 제한적인 공동 연구개발은 걸음마를 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정치적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양국에서 정권이 바뀌는 등 변수가 생기면 양국 협력이 후퇴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합의가 지난 8월 한미일 공동선언에 기초하고 있는 점 등에서 쉽게 되돌리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과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대중국 블럭화가 형성되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이 정치적 갈등을 이유로 그간의 경제협력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이미 양국 경제단체와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의 협력이 이뤄지고 있어 비교적 빠른 속도로 협력의 틀이 복원되고 있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30일 한일의원연맹이 주최한 '한일 경제협력의 현황과 전망' 토론회에서 양국 기업간 필요에 의해 정부와 민간 차원의 협력이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 연구위원은 "한일 경협의 주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소재를 공급하려는 일본기업들"이라며 "IT강국인 한국이 일본의 디지털 전환 과정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외대 이창민 교수도 "수소와 암모니아를 시작으로 리튬과 니켈, 코발트 등 탄소중립에 필수적인 중요광물 확보를 위해 양국이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양국의 자원 및 에너지 관련 공기업이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방안도 있다"고 했다.

다만 양국간 정부와 기업 차원의 이해관계가 다른 점도 많기 때문에 경제협력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양국의 산업구조와 주력산업이 비슷한 점이 많아 상호 경쟁관계에 놓여 있어 협력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전기차 및 2차전지 등 양국이 경쟁하는 사업이 연관돼 있어 산업간 유불리 계산이 복잡할 수는 있다"고 했다.

백만호 이재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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