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손자녀 돌봄 위한 '조부모 육아휴가' 도입 확대

2023-11-17 10:57:44 게재

지자체·기업 중심으로 별도 유급휴가 활용 가능

부모 맞벌이 늘고, 정년연장에 조부모 직원 늘어

일본에서 손자와 손녀의 육아와 보육을 위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휴가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손자녀 휴가'가 확대되고 있다. 부모가 맞벌이인 경우 자녀에 대한 육아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조부모가 대신 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멀리 떨어져 사는 딸은 주변에 의지할 사람도 없고, 육아와 일을 양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손자와 손녀를 위해 휴가를 내서 딸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다."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청에서 아동·청소년부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요시가와 유카리씨(60)는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4차례에 걸쳐 휴가를 얻었다. 요시가와씨는 최근 오키나와에 있는 둘째 딸의 집에서 1세와 3세인 두 아이를 돌보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고리야마시는 올해 2월 손자녀를 돌보거나 자녀가 출산할 때, 조부모인 시청 직원이 휴가를 낼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시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모두 30명의 직원이 손자녀를 돌보기 위한 휴가를 사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요시가와씨는 지난 8월 주말을 끼고 4일 동안 휴가를 얻어 두 손자녀를 돌보고 있다. 요시가와씨는 "아이를 돌보는 것은 딸보다 내가 선배이고 프로 아니냐"면서 "완벽하게 하려고 하기보다 정성을 다해서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손자와 손녀의 육아를 위해 제도적으로 휴가를 도입하는 지자체와 기업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미야기현은 올해 1월 맞벌이 부부의 증가에 따라 조부모의 육아 참여를 촉진하고자 태어난 손자가 만1세가 될 때까지 사용할 수 있는 휴가제도를 도입했다.

미야기현 인사과 담당자는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현청 직원의 정년이 단계적으로 65세까지 연장되기 때문에 앞으로 손자와 손녀를 갖는 직원도 늘어날 것"이라며 "통상의 유급휴가보다 '손자녀 휴가'가 직원의 이해를 얻기 쉽고, 휴가를 내는 데서도 부담이 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카야먀현은 올해 관내 기업이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장려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종업원 300인 이하 기업이 취업규칙 등을 통해 제도를 도입할 경우, 1일 이상 휴가를 얻을 경우 5만엔(약 43만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후쿠이현도 올해부터 현내 기업을 대상으로 손자녀를 돌보기 위해 10일 이상, 또는 5일 이상 두차례에 걸쳐 휴가를 얻으면 10만엔(약 86만원)을 지급하는 제도를 신설했다.

기업들도 제도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오키나와파이낸셜그룹은 올해 4월 이 제도를 도입했다. 미취학 손자녀가 1명 있으면 연간 5일, 2명이면 연간 10일의 휴가를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이 회사 담당자는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제도가 있으면 사원의 회사에 대한 애착이 높아진다"며 "직원들이 보다 오랫동안 회사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제도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 회사 자회사인 오키나와은행에서 일하는 카가즈 하루미씨(62)도 지난 6월 함께 사는 둘째 딸의 심한 발열로 딸의 간병과 세살 손녀를 돌보기 위해 휴가를 냈다. 이러한 휴가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병원에 가거나 집안의 제사 등의 명목으로 휴가를 소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를 돌본다는 명목으로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근로환경은 아니었다. 카자즈씨는 "휴가를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고, 딸도 나에게 부탁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오사카에 본사가 있는 식품업체 '에자키그리코'는 2019년부터 손자녀가 있는 직원이 휴가를 낼 수 있도록 했다. 육아나 아이의 보육원 입원식, 운동회 등이 있을 때도 사용이 가능하다. 도정할 때 사용하는 기계 등을 제작하는 히로시마에 본사를 둔 '사타케'는 사원의 손자녀가 출생하면 10일 이내에 3일 연속 유급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런 휴가제도를 처음 도입한 기업은 2006년 다이이치생명보험이다. 이 회사는 자녀의 아이가 태어나면 3일간 유급휴가를 얻을 수 있고, 주말을 끼고 다른 휴가를 더하면 최대 9일간 휴가를 낼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최근 1년간 휴가를 이용한 직원은 900명 안팎에 이른다.

손자녀 휴가가 확산되는 것과 관련, 도레이경영연구소 미야하라 준니 D&WLB추진부장은 "맞벌이 세대가 늘어 조부모의 육아 참여에 대한 요구가 넒어지고 있다"며 "여기에 정년이 늦춰지면서 직장인 가운데 손자녀를 갖는 사람도 늘어나는 것이 제도 확대의 배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야하라 부장은 "기업측에서 보면 유연한 작업환경을 만든다는 점에서 향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보육 가정의 부담을 줄이려면 지자체와 기업은 남성의 육아 참여를 촉진하는 제도와 관행도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백만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