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 141년 비사│⑭ 조선 외교관이자 서화가였던 청운(菁雲) 강진희(姜璡熙)

미국 풍경 담은 최초의 기행견문화 그려

2023-11-17 11:18:19 게재
한종수 한국 헤리티지연구소 학술이사

청운 강진희(1851~1919)는 1887년 초대 주미전권공사 박정양의 수행원으로 임명돼 1888년 1월 미국에 부임했던 인물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진옥(進玉), 호는 청운(菁雲)으로 1885년 35세의 늦은 나이에 사역원(司譯院) 종9품 참봉의 관직에 올랐다. 이듬해 조일해저전선부설조약 체결을 위해 일본 임시대리공사 다카히라 고고로의 접응관차(接應官差)로 일본을 방문한 관력 등으로 보아 일본어와 영어 등 어학실력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진희는 조선정부 관원으로서보다는 서화가로 한국 미술사에 끼친 업적이 더욱 부각됐다. 그가 미국 워싱턴DC에 소재하고 있는 조선공사관에서 근무한 1년여 동안 〈화차분별도(火車分列圖)〉, 〈묵매도(墨梅圖)〉, 〈삼산육성도(參山六星圖)〉, 〈승일반송도(昇日蟠松圖)〉, 〈잔교송별도(棧橋送別圖)〉 등 총 5편의 그림을 그렸다. 그중 〈화차분별도〉는 135년 전인 1888년 미국 워싱턴DC 포토맥강 철로 위를 달리는 두 대의 기차를 직접 보고 그린 그림으로, 한국인이 미국을 방문해 그린 최초의 미국 풍경화다. 한국 미술사적 가치는 물론 조선과 미국, 조선과 중국의 정치·외교사적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화차분별도> 1888년 제작, 종이에 먹, 28×34cm (간송미술관 소장)


〈화차분별도〉는 강진희가 미국에서 체류하는 시기에 화초 팽광예(주미 청국 참찬관)와 강진희의 여러 그림과 글을 모아 만든 화첩 〈미사묵연-화초청운잡화합벽〉(간송미술관 소장)에 실려 있는데, 첫 장 표제에 "대조선 개국 497년 무자년(1888년)에 워싱턴의 주미조선공관에서 그렸다"라고 적혀 있어 정확한 제작 연도와 장소를 알 수 있다.

제목 '분별'(分列)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두 대의 기차가 각각의 철교 위를 달리고 있는 경관이다. 철교 아래에는 배 한 척이 한가롭게 떠 있고 강둑에는 나무들과 뾰족한 지붕의 5층 건물이 서 있다.

강진희는 조선에서 미국 워싱턴DC로 부임하는 과정에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으며, 샌프란시스코부터 워싱턴DC까지는 기차를 탔다. 또 1888년 4월 1일(양력) 참찬관 이상재, 번역관 이채연, 무변 이종하 등과 함께 볼티모어로 바람 쐬러 가며 산과 교량을 봤다. 그가 본 풍경이 〈화차분별도〉의 모티브가 됐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아래는 볼티모어에 다녀온 날, 주미공사 박정양이 쓴 《미행일기》의 내용이다.


참찬관 이상재, 번역관 이채연, 수원 강진희, 무변 이종하 등이 바람 쐬러 볼침(볼티모어)에 갔다가 당일에 돌아왔다. 듣건대, 당일 12시에 철도국으로 갔는데, 이날이 서력으로 일요일이어서 12시에 출발하는 기차가 제때 출발하지 못하고 대기하다가 오후 3시에 비로소 출발하여 오후 4시에 볼침에 도착하였다. 120리 연로에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산은 대다수가 납작하게 엎드려 있으며, 수풀이 우거졌고, 물이 혹 돌아나가거나 모이고 교량이 잇달아서 매우 볼 만하다. 단 기차가 너무 빨리 달려서 한쪽 눈을 돌리면 이미 지나가 버리고 잘 볼 수가 없었다.

두 대의 기차가 연기를 내뿜고 가는 모습을 그린 강진희는 〈화차분별도〉 제목 왼쪽에 '웃어넘긴다'는 뜻의 '付之一笑'를 백문방인(白文方印, 네모 모양으로 종이에 그림이나 글씨를 찍을 때 글씨가 하얗게 나오는 것)으로 날인했다. 또 그림에 날인된 '不名一家'는 '송대 소식(蘇軾)의 시풍(詩風)은 이전 시대의 한 시인만 고집하지 않고 많은 시인의 시풍을 학습했다'는 글귀의 일부로, 강진희가 한 작가만의 작풍을 따르지 않고 여러 작가의 다양한 작풍을 섭렵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철로와 기차를 중심으로 주변 배경은 생략하고 간략한 필치로 스케치했다. 뛰어난 필치는 아니더라도, 실제로 본 이국의 풍경을 핵심만 포착해 묘사하면서 그림의 주제를 뚜렷하게 전달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풍경을 담아낸 최초의 기행견문화로서 의의가 있다.

<잔교송별도> 1888년 제작, 종이에 먹, 20×25.2cm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미국 풍경을 그린 다른 작품으로는 〈잔교송별도〉(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가 있다. 멀리 떠 있는 큰 배를 향해 여러 사람이 탄 작은 배가 노를 저어 향해가고 있고, 나무다리 위의 두 인물이 배웅하고 있는 모습이다.


서기관 이하영과 수행원 강진희, 학도 이계필, 미국인 알렌을 공사관에 남도록 하고, 오전 7시에 서기관 이상재와 무변 이종하, 하인 김노미를 데리고 비를 무릅쓰면서 워싱턴정거장으로 나갔다. 남게 된 공사관원들과 알렌이 나와서 전별하였다. 4만 리를 배와 기차로 동행하고 1년 동안 기쁨과 슬픔을 함께 맛보며 생활하다가 이별하니 섭섭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각하니 병이 깊은 몸이 더욱 피로하다.


이 그림은 초대 공사 박정양이 영약삼단을 어겨 조선으로 소환된 날(양력 1888년 11월 19일)을 배경으로 그려졌다. 이날 박정양은 워싱턴에 이하영, 강진희, 알렌 등을 남겨두고 떠났기 때문에 다리 위에서 심의형 장포를 입은 두 인물은 이하영과 강진희일 것이다. 실제로는 워싱턴 정거장에서 송별했으나, 다시 배를 타고 먼 길을 떠나는 일행들과 송별하는 마음에서 기차역이 아닌 항구로 그려냈다. 이날 강진희의 심정이 그림에 잘 나타난다.


함께 오고 함께 가자고 올 때 약속했건만 오늘 아침에 나만 남을 줄 어찌 알았으랴. 무자년 10월 16일(양력 11월 19일), 사절 일행이 먼저 돌아가기에 섭섭함을 가눌 수 없어 이것을 그려 마음을 달랜다.


〈잔교송별도〉에는 '포부를 위해 공부를 접는다'는 뜻의 '有懷投筆'으로 백문방인을 새겼다. 파도는 두꺼운 윤곽선을 그린 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얇은 필선으로 그리고, 사선으로 겹쳐 반복적으로 표현했다.

<삼산육성도> 1888년 제작, 종이에 먹, 120×60.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다음의 〈삼산육성도〉는 강진희가 워싱턴에서 서양 종이에 그린 작품이다. 여섯 개의 점을 따라 연결된 남두칠성(南斗六星)과 중국 전설에 나오는 삼신산인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洲)를 그린 작품으로 제작 의도는 그림에 적은 강진희의 문장을 통해 알 수 있다.


오늘 2월 초8일은 곧 우리 동궁 저하가 탄강(誕降)하신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신은 먼 밖에서 엎드리오니, 즐겁고 기쁜 정성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해옥(海屋)에서 구여(九如)를 칭송하고, 산을 향해 백번 절하옵니다. 신 강진희


위의 글을 통해 언급된 동궁 저하는 세자인 이척(李拓, 훗날 순종 즉위, 1874~1926)을 가리키며 1888년 2월 초8일(양력 3월 9일)은 동궁의 15번째 탄강일이었다.

이날 공사관에서는 관원들이 망하례(望賀禮)를 행하고 '문안(問安)' 두 글자를 전보로 보내 동궁의 탄강을 축원했다. 그림의 남두육성은 예로부터 생명과 수명을 관장한 별자리이고, 삼신산은 많은 신선들과 불로불사의 선약(仙藥)이 있다고 알려진 전설의 산이다.

담묵의 선묘로 산의 윤곽을 그리고 초묵을 이용한 여러 번의 붓질로 산의 윤곽을 뚜렷하게 표현했다. 암석 사이의 공백은 짧은 측필을 그어 메꾸었다. 서기(瑞氣)가 가득한 구름의 표현과 암석에 그려진 짧은 풀의 묘사는 자유분방한 기질이 엿보인다.


■ 참고자료
1. 김영욱, 「청운 강진희(1851~1919)의 생애와 서화 연구」, 『미술사연구』 33(2017)
2. 박정양 저, 한철호 역, 《미행일기》, 국외소재문화재재단(2015)
3. 알렌, 김원모 역, 《알렌의 일기》, 단국대학교출판부(1991)
4. 이구열,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 한국 근대미술사학의 개척자 이구열의 화단 비화》, 돌베개(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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