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연동국채 많은 영국 … 향후 5년간 이자만 150조원

2023-11-24 10:56:24 게재

총국채 25% 비중

영국의 내년 물가상승률이 올초 예상치보다 커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물가와 연계된 국채이자비용도 상승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영국 예산책임청(OBR)은 22일(현지시각) 내년 말 물가상승률을 2.8%로 예상했다. 올해 3월 예상치 0.9%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5년 간 물가연동국채(링커·linkers) 이자만 920억파운드(약 15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물가상승률이 두자릿수였던 2021~2022년의 경우 물가연동채권 이자지급액은 890억파운드로, 영국 GDP의 3.4% 수준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은 현재 총 국채의 약 4분의 1이 물가에 연동돼 있다. 선진국 중 두번째로 물가연동국채 비중이 높은 이탈리아(12%)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영국은 1981년 위기에 취약한 신흥경제국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물가연동채권을 처음 도입했다. 1970년대 극심한 인플레이션 충격에 시달리던 영국 재무부는 이자를 급격히 인상해 투자자를 유인하지 않으면 재정을 꾸릴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악순환에 처해 있었다.

물가연동채권 발행을 결정할 당시 재무부 수석경제고문이었던 테리 번스 경은 FT에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원하던 국채였다"고 말했다.

당시 보수당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는 신뢰를 구축하는 게 급선무였다. 제프리 하우 장관이 이끌던 재무부는 '물가상승에 연동해 이자를 지급하는 국채를 발행하면 정부가 부채를 부풀릴 유인이 사라지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가연동국채 발행물량이 많아졌다. 다른 나라에 비해 확정급여 연금제도 비중이 컸기에 물가연동국채 수요도 그에 따라 치솟았다. '악사 인베스트먼트 매니저스'의 이코노미스트이자 영국 국채관리국(DMO) 전 관리였던 데이비드 페이지는 "영국 연금제도가 물가연동채권 수요를 대부분 창출했다"고 말했다.

물가연동채권은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아닌, 소매물가지수(RPI)를 따른다. 최근 수년간 RPI가 CPI보다 1%p 이상 높아 영국정부의 이자부담도 그만큼 컸다. RPI는 지난해 14% 이상으로 정점을 찍었다. 올해 10월 RPI는 6.1%로, CPI 4.6%보다 1.5%p 높았다.

2017년 영국예산책임청이 물가연동국채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하면서 영국정부는 발행비중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올해 신규발행 국채의 약 11%가 물가연동국채다. 영국 국채관리국은 "물가연동채권 발행비중을 추가적으로 더 줄일 계획은 없지만 시장상황을 고려해 매년 상황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절대적인 금액으로 보면 2022~2023년보다 2023~2024년 더 많은 물가연동채권을 발행할 계획이다.

영국정부는 고물가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물가연동채권 발행비중을 급격히 줄인다면 이 제도의 도입취지인 인플레이션 억제효과가 약화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 물가연동채권 평균만기가 18년으로 일반 국채의 13년에 비해 길기 때문에 향후 물가가 잡힐 경우 정부의 이자부담도 완화될 수 있다고 본다. 영국 재무부 관계자는 "지금은 고통스러운 시기로 느껴지지만 최장 50년만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잠깐의 경고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영국 최고의 싱크탱크로 꼽히는 '영국재정연구소(IFS)' 소장인 존 케이는 "40여년 전 물가연동국채를 채택하기로 한 결정이 성과를 거뒀는지 여부를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하지만 균형 잡힌 관점에서 볼 때 성과를 거뒀다.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낮았다. 1981년 이후를 돌이켜보면 물가연동국채를 발행하는 것이 더 저렴했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