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플레이어' 꿈꾸는 K방산의 명암

2023-11-29 10:53:16 게재

신냉전 시대 맞아 국산 무기 각광 … 해외 언론 높은 관심, 일부선 부작용 우려도

최근 해외언론들이 한국 방위산업 이른바 K방산을 소개하는 경우가 부쩍 잦아졌다. 미중 전략경쟁, 우크라이나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등 신냉전 기류 속에서 가성비 높은 한국 무기에 대한 세계의 관심과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 중심 골자다.

일부에서는 K방산의 무리한 세계시장 진출과 확대가 정치적 경제적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상 최대 호황을 맞고 있는 K방산의 엇갈린 명암이다.

해외 언론이 주목하는 K방산

11월 17일 미국 정책전문지 내셔널인터레스트는 K2흑표 전차를 소개했다. 이 매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현대전에서 탱크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면서 "한국의 K2 흑표 전차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전차이지만 전장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유능한 전차 중 하나며, 심지어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전차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K2 흑표 전차의 개발 관련 히스토리도 소개했다. 1970년대 M48 패튼 전차를 개량해 사용하던 한국이 미국산 M1 에이브럼스 장갑차를 도입했지만 국산화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않았고 결국 현대로템이 대한민국 육군을 위해 K2 흑표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6일(현지시각) 폴란드 그디니아항구에 K2전차와 K9자주포 초도물량이 도착한 가운데 한국 엄동환 방위사업청장(사진 가운데)이 폴란드 안제이 두다 대통령(오른쪽)에게 이를 설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앞서 10월 23일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의 국방야망은 기술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는 블룸버그 전문가 팀 컬판의 분석글을 게재했다. 컬판은 "치명적인 무기보다 소형 전자기기를 만드는 것으로 더 잘 알려진 한국이 세계 방산시장 4위를 목표로 삼고 있다"면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기술력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이어 "핵보유국이 되기 직전의 북한과 수십년 동안 대치하면서 한국은 미국에 크게 의존하는 대신 천천히 자체 역량을 구축해야 했다"면서 "자급자족과 비축을 통해 한국은 글로벌 수출국으로 변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유럽 전쟁으로 인해 한국은 미국과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침략을 점점 더 두려워하는 주변 국가들에 대한 무기판매가 작년에 두배 이상 증가했다고 전했다.

컬판은 상위권 진입의 열쇠는 경쟁국들 사이에서 한국만의 독보적인 기술력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한국은 메모리 및 스토리지 칩,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분야의 글로벌 리더들이 있고 이러한 분야가 미래성장의 좋은 기반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급히 지원된 물품 중에는 스마트 폭탄이 있었고 그 핵심은 내부에 탑재된 회로인데 한국은 이러한 초소형 시스템의 개발과 제조에 앞서 있다고 설명했다. 즉 첨단무기에 필요한 대부분의 센서와 칩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등의 기기 및 부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최신분석도 덧붙였다. SIPRI에 따르면 한국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세계 주요 무기 수출국 9위를 차지했고, 지난 5년 동안 74%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률을 보였다고 소개했다.

한국 방산, 글로벌 플레이어로 변신

지난 6일 미국 군사전문지 브레이킹디펜스는 '한국 방위산업이 글로벌 플레이어로 변신한 방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 매체 역시 SIPRI 보고서에 기초해 한국 방위산업의 성장세를 설명하면서 특히 2022년 한국 방산 수출액은 173억달러(약 22조6000억원)로 전년 대비 2배 이상으로 뛰었고, 2023년에도 증가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한국 방산수출의 성공비결을 분석하는 데 주력했다. 우선 정부와 방산업체 간 신뢰관계를 꼽았다. 정부 차원의 주문이 오면 곧바로 생산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이다. 한화 현대로템 LIG넥스원 현대중공업 기아자동차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한국 방산업체들이 국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생산라인을 가동 중이지만 수출 주문에 맞춰 쉽게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이 한국이 해외 방산 계약을 따내는 이유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비결로는 생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현지화를 거론했다. 한국 기업들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장비를 자유롭게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으며, 기술을 이전하고 현지 생산을 설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수한 기술과 품질, 그리고 가격경쟁력까지 갖추면서 글로벌플레이어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외 여건도 일조했다. 한국이 지난 70년 가까이 북한과 대립하며 폴란드처럼 비슷한 상황에 놓인 국가에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보인다는 점도 성공 비결로 지목했다.

다만 브레이킹디펜스는 "한국 방위산업의 궤적은 상승추세에 있지만 전세계의 분쟁과 긴장에 따라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얼마나 높은 수준에 도달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다

K방산이 마냥 장밋빛 청사진만 그릴 수는 없다. 무리하면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한때 잭팟으로 불리던 폴란드 상황이 단적인 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월 8일자에서 폴란드 총선 이후 수십억달러 규모의 한국 무기 거래가 위험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폴란드의 현 집권당인 법과정의당(PiS)은 긴급 지출을 위한 특별 예산을 편성해 한국 무기 구입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나 지난달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한 야권연합은 이 특별 예산편성을 비판해 왔다. 가뜩이나 폴란드 내에서 무기 체계에 대한 한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던 터에 정권교체 수순까지 돌입하면서 한국의 무기수출마저 무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연합을 이끈 도날트 투스크 전 총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쪽 측면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폴란드2050(PL2050) 등 일부 야당은 총선 승리 후 비용 지출이 큰 국방정책을 감사하겠다고 공언했다.

폴란드2050의 미하우 코보스코 부대표는 "우리는 체결된 모든 계약을 그만두겠다고 발표하거나 카라칼 헬리콥터와 같은 분쟁을 반복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비밀에 부쳐진 구체적인 조건 등에 대해선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지난해 폴란드와 총 124억달러(약 16조2000억원) 상당의 무기 수출 1차 계약을 체결했다. 한달 뒤 서명한 1차 이행계약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등이 폴란드에 FA-50 경공격기,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 로켓, K-2 흑표전차 등 124억달러 규모의 무기를 공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 업체들은 1차 계약을 체결한 뒤 나머지 물량에 대해서는 올해 상반기까지 2차 계약을 맺어 속도감 있게 계약을 매듭짓는다는 계획이었다. 기본계약에 따르면 2차 계약 예상 물량으로 K-9 자주포는 1차 계약(48문)보다 많은 600문, K-2 전차는 1차 계약(180대)보다 4배 이상 많은 820대로 계획돼 30조원 규모로 추산됐다.

하지만 폴란드 국내 정치상황이 급변했고 여기에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의 금융지원 여부마저 불투명해지면서 2차 계약 이행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방부가 직접 나서 5개 시중은행의 금융지원을 이끌어내는 방안을 모색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러나 국내 금융지원 문제가 가까스로 해결되더라도 폴란드 정치 상황은 여전히 불확실한 요소로 남을 수밖에 없다.

FT는 전문가들을 인용 "가장 중요한 문제는 차기 폴란드정부가 수십조원에 달하는 계약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문제"라면서 "한국수력원자력이 폴란드 원전사업에도 협력하고 있는데, 만약 무기 계약 협상이 어려워지면 국방 분야를 넘어 양국 관계에 그림자가 드리울 수 있다"고 짚었다.

국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종철 경상국립대 교수는 7일 내일신문 기고문을 통해 "폴란드가 몇년에 걸쳐서 원금과 이자를 갚을지, 우리 국책은행이 어느 정도 이자로 특혜를 주는지 설명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면서 "미국이나 나토 국가들도 자국의 포탄 비축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고, 우리보다 우수한 자주포와 탱크를 생산하는 국가도 대규모 금융지원과 군사기술 제공을 쉽게 결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군 장성 출신의 한 군사전문가는 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폴란드 방산수출 건에 대해 언급하며 "방산수출은 국제정치적 역학관계가 작용하는 특수한 영역"이라며"미국 같은 나라는 자기 마음대로 팔아도 뒷일을 감당할 힘이 있지만 한국 같은 나라가 미국처럼 하다가는 보복을 당하거나 무기수출 대금을 받지 못해 망하는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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