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은행들, '바젤III(은행자본 건전화 개혁방안)' 반대에 중소기업 동원?

2023-12-05 11:20:25 게재

'대출 줄면 중소상공인만 피해' 논리 펴

은행들, 여론전에 법정공방도 불사할듯

미국 월가은행을 규제하려는 미정부의 개혁안에 중소상공인들이 강력 반발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4일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BBW)에 따르면 최근 수십명의 중소상공인들이 미의회 의사당을 행진하며 '중소기업 압박 중단'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현재 미정부가 검토중인 은행규제안이 중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뉴햄프셔에서 웨딩부티크를 운영하는 디나 아켈은 링크드인 게시글에 "정부 개혁안은 중소상공인의 대출비용을 증가시킬 것"이라며 "기업들이 직원을 고용하거나 농부들이 작물을 키우는 일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와 연방예금보험공사, 통화감독청 등 은행감독기관들은 월가은행들의 재무건전성기준을 높이기 위해 은행자본 건전화 개혁방안인 '바젤III' 최종안을 마련해 입법예고 및 의견수렴을 거치고 있다.

이 개혁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마련된 것으로, 전세계 은행자본을 건전화해 금융위기시 손실흡수능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월가은행들은 위험가중자산 100달러당 9~13달러를 보통주 자기자본(CET1)으로 쌓아두고 있다. 미국 바젤III 최종안은 여기에 2달러 이상을 추가 적립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블룸버그 산하 연구기관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이같은 최종안이 확정될 경우 JP모간체이스 등 월가 8대 은행들이 보유한 보통주 자기자본 초과액 1450억달러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물론 440억달러를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월가은행들은 보통 이 초과액을 자사주매입 등에 활용해왔다.

JP모간 CEO 제이미 다이먼은 지난 9월 투자자들에게 "정부가 진정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며 "은행이 절대 실패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이런 방식으로는 안된다"고 반발했다.

오는 6일(현지시각) 다이먼을 비롯해 골드만삭스와 모간 스탠리 등 월가은행 거물급 CEO들이 미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한다. 이들 모두 '새로운 규제안이 실물경제에 불필요한 해악을 끼칠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들은 자기자본을 늘리면 은행의 대출여력이 줄어들어 중소상공인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여론전을 펴고 있다. 한 은행은 최고인기스포츠인 미식축구(NFL) 경기에 대대적인 광고를 진행하는가 하면 골드만삭사는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정부의 개혁안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촉구하는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 각종 경제매체들도 바젤III 개혁안이 초래할 피해를 알리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월가은행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젤III 자기자본 확충안을 폐기하거나 대폭 수정하는 것이다. 그게 안된다면 일단 시행시기라도 대폭 늦추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미정부는 이미 의견제출 기한을 올해 11월 말에서 내년 1월 중순으로 연장했다.

월가은행과 관련 로비단체들은 100페이지가 넘는 이의제기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개혁안이 철회되지 않으면 금융당국에 대한 법적조치까지 고려중이라고 한다.

로펌 '코빙턴 앤 벌링'의 파트너변호사인 랜디 벤젠크는 "월가은행들이 건전성규제당국에 대해 이처럼 강력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은행 입장에서 개혁안은 금도를 넘은 수준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개혁안을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인물은 연준 은행감독 담당 마이클 바 부의장이다. 그는 지속적으로 "금융위기로 인한 피해를 고려할 때 은행의 자본건전성을 계속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600만가구가 주택압류로 집을 잃었고, 1000만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며 "반면 월가 6대 은행들은 지난 10년 동안 1조달러 수익을 올렸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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