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진출 기업, 어느 곳 흥하고 망하나

2023-12-06 11:06:04 게재

최근 실패 기업 많아 … 이코노미스트 "수출지향, 인프라 지원, 토착화 등 관건"

최근 인도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의 실패담이 두드러지고 있다. 서방과 중국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많은 기업들이 중국에서 벗어나 인도를 찾고 있지만, 상당수 기업이 인도사업을 포기하고 있다.

지난 수년 간 주목할 만한 포기 사례로는 아부다비상업은행과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인 포드, 스위스 시멘트 대기업인 홀심, 독일 소매업체 메트로 등이 꼽힌다. 디즈니는 스트리밍사업 전체 또는 일부의 매각을 협상중이다. 지난달 24일에는 7800억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가 인도 디지털결제 플랫폼기업 'Paytm'의 지분 2.5%를 매각했다.

인도에 유입되는 외국인직접투자(FDI)도 2018년 이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인도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약 1만1000개의 외국기업이 인도에 진출했다. 같은 기간 2783개의 기업이 인도를 떠나거나 문을 닫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의 경제규모를 고려하면 이는 매우 많은 수치"라고 지적했다.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올해 10월 27일(현지시각) 수도 뉴델리에서 개막한 '제7회 인도모바일콩그레스'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인도를 떠난 일부 기업들은 열악한 도로 인프라, 숨쉬기 힘든 공기, 불완전한 통신망 등 현실적인 문제를 거론한다. 또 다른 기업들은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토지를 구입할 때, 또는 세금을 납부할 때 법적인 장애물이 있어 망설였다고 말한다.

인도 토종기업과의 경쟁서 밀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많은 기업들이 토종 경쟁기업들보다 나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컨설팅기업 BCG에 따르면 외국계기업 총영업이익률은 평균 12%인데 반해 인도 토종기업의 총영업이익률은 15%에 달한다. 한 외국계 컨설팅기업 대표는 "인도가 가진 잠재력과 달리 인도 현지의 현실에 부닥쳤을 때, 많은 외국계기업 최고경영자들은 금세 '무능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도사업을 포기하는 다국적 기업이 많긴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영국 대기업 유니레버의 인도 자회사인 '힌두스탄 유니레버'가 만든 도브비누나 크노르 고형육수 및 기타 소비자 필수품은 인도 전역에 산재한 900만개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인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는 일본 회사와 합작한 마루티 스즈키다.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일본 혼다는 곧 인도 라이벌기업인 히어로를 제치고 제1의 이륜차 제조사로 부상할 전망이다. 인도인들은 삼성전자 휴대폰을 구입하고 메타의 왓츠앱을 사용해 사적인 대화를 나눈다. 인도인들은 디지털결제의 절반을 미국 소매업체 월마트가 소유한 폰페(PhonePe)를 통해 결제한다. 일부 외국계 기업들은 철수는커녕 인도에 대한 투자를 2배로 늘리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어떤 기업이 인내심을 갖고 인도에 남아 있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보면 외국계 기업이 인도에서 성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인도정부 우선순위 사업 주목해야

우선 인도에서 성공할 수 있는 외국계 기업 중 한 부류는 수출지향적 제조업 활성화 등 인도정부의 우선순위에 부합하는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다. 애플은 일부 아이폰 제조를 인도에 설립한 계약 제조업체로 이전하면서 이같은 접근방식의 모범사례가 됐다. 덴마크 베스타스와 독일 센비온은 해외 판매용 풍력터빈을 인도에서 생산하고 있다. 테슬라는 인도에 전기자동차 공장을 설립하는 조건으로 전기자동차에 대한 수입관세를 낮추는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의 경제적 야망을 뒷받침하는 간접적인 방법은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먼 시장으로 운송하는 데 필요한 도로와 항만, 기타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는 것이다. 한 대형 금융회사의 투자 매니저는 엔지니어링기업들의 인도 자회사를 인도 성장과 관련한 좋은 투자처로 꼽았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자동화기술·로봇공학 기업 ABB가 설립한 인도 자회사는 지난 10년간 연 평균 21%의 총주주수익률(주식평가이익+배당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는 모기업 수익률의 2.5배에 달한다. 미국 우주항공·자동제어기업 하니웰의 글로벌 자회사 평균 총주주수익률은 11%이지만, 인도법인 수익률은 28%에 달했다.

또 다른 성공 범주는 인도 사업을 토착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다국적 기업들이다. 일부 기업들은 인맥이 풍부한 현지인들과 협력한다. 구글과 메타는 인도 최대기업인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와 파트너십을 맺고 수십억달러를 투자했다. 릴라이언스 산하 지오텔레콤은 4억4000만명의 인도인에게 모바일 인터넷을 제공하고 있다.

올해 8월에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릴라이언스와의 합작투자를 통해 인도시장에 복귀했다. 블랙록은 앞서 인도의 소규모 기업들과 손잡고 인도에 진출했으나 2018년 사업을 접은 바 있다. 인도에 단독으로 진출하려던 피델리티도 이미 쓴맛을 보고 손을 털었다. 중국 상하이자동차그룹(SAIC)은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인도 자회사 MG오토의 대규모 지분을 인도의 철강대기업 JSW에 매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국적 기업이 사업을 토착화하는 다른 방법도 있다. 싱가포르 최대은행 DBS는 본사에서 운영하는 대신 인도인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갖춘 현지 계열사를 설립했다. 월마트는 2018년 인도 이커머스 플랫폼인 플립카트의 지배지분을 인수해 현지에서의 입지를 강화했다. 올해 7월에는 미국의 기술투자기업인 타이거 글로벌과 액셀이 보유한 플립카드 지분을 추가로 매입했다.

비우호적 환경에도 꿋꿋이 버텨

마지막으로 중요한 범주는 이미 인도에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기업들이다. 인도의 한 국부펀드 책임자에 따르면, 이들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상품과 서비스의 비공식적인 공급을 대체하면서 번창하는 경우가 많다. 컨설팅기업 베인앤컴퍼니의 니킬 오자는 "ABB, 하니웰과 마찬가지로 많은 외국계 기업들이 인도 자회사를 통해 더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힌두스탄 유니레버나 마루티 스즈키처럼 인도에 진출한 지 수십년 된 기업도 있다. 많은 인도인은 이들을 자국기업이라고 여긴다고 한다.

일부 기업들에 대한 인도인의 반응은 처음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10년 전 인도에 진출한 이후 아마존은 현지기업 인수 제한, 자체 브랜드제품 판매 제한, 재고 규모에 대한 규제, 수백만개의 현지 상점을 위협한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하지만 아마존은 꿋꿋이 버텼다. 올해 6월 아마존 CEO 앤디 재시는 "2030년까지 인도에 65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해 대 인도 총 투자금을 260억달러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존은 현재 이커머스 유통망을 확장하고 클라우드 컴퓨팅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달엔 스트리밍서비스인 프라임 비디오에 인도의 국민스포츠인 크리켓 등을 방영하는 스포츠 전용채널 '팬코드(FanCode)'를 신설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러한 접근방식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도시장에서 성장하는 아마존에 대해 인도정부 관리들의 저항이 줄어들고 있다"며 "이는 인도의 제조공장을 전세계와 연결하는 데 아마존의 물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일 수 있다. 또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투자 약속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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