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정치는 생물' 어떻게 변질됐나

2023-12-11 11:26:52 게재
국내 여론조사 회사 4곳이 격주로 진행하는 전국지표조사(NBS.12월 4~6일)에서 국가기관별 신뢰여부를 물었다. '신뢰한다'는 응답이 경찰 52%, 법원 46%, 지자체 45% 순이었다. 국회(15%), 정부(37%), 검찰(38%) 순으로 신뢰도가 낮았다. 지난해 12월 같은 조사와 대비하면 정부 신뢰도 하락세(6%p)가 눈에 띈다. 이번 조사의 대통령 국정운영 부정평가(60%) 잘못된 국정방향(58%) 인식이 높은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국회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올 3월 통계청이 내놓은 '2022 한국의 사회지표'에서 국회 신뢰도는 24.1%로 전년보다 10.3%p 떨어졌다. 또 검찰은 형사사법기관에서 신뢰도가 가장 낮았다. 여야할 것 없이 겉으론 혁신·반성을 외치지만 결국은 원점이다. 검찰의 불공정 수사라는 인식이 야당의 공세 수준을 넘었다는 뜻이다. 국회나 검찰이나 말 따로 행동 따로, 약속 파기가 빈번한데 '믿고 의지'할 수 있겠나.

최근 정치권에서 "정치는 생물" "서생적 문제의식, 상인의 현실감각"이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 어록 인용이 빈번하다. 이 말들은 DJ가 여야 협치,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 마련, 실용주의 등을 강조해 자주 사용하던 경구다. 최근엔 대국민 약속을 깨기 위한 '밑자락 깔기'용으로 전락했다.

내년 총선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놓고 연동형 비례제를 약속했던 민주당이 병립형으로 회귀하려는 의도를 비치면서 '생물' '현실감각' 등을 동원한다. 다당제·정치개혁 등 정치의 이상적인 모습에 대한 약속과 당면한 총선 현실에서 가장 선차적인 정치적 과제 중에선 현실을 택하는 것이 정치라고 강변한다.

공당의 규칙으로, 본회의장의 대국민 약속으로 내놓은 것을 '형식적 원칙'으로 취급하며 상황에 따라 폐기해도 되는 것처럼 밀어붙인다.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본회의장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하고 3개월 후 체포동의안 반대를 주문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내년 총선에 맞춰 내놓은 공약은 국민에게 소개할 때 '추진 확률 00%' 식으로 꼬리표를 다는 게 맞다. 상황에 따라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르잖나.

또 하나, 기억할지 모르지만 2020년 7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는 민주당의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공천 방침에 대해 "약속파기가 불가피하다면 어겨야 한다. 그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석고대죄 수준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신뢰의 위기'를 걱정하는 동료의원들의 지적을 소수파의 정치공세로 여기는 한 DJ의 경구는 본래자리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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