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잘 나가던 배터리산업 제동걸리나

2023-12-13 10:48:53 게재

우리나라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의 누적 수주잔고는 1000조원이 넘는다. 수주 물량은 이들 기업이 10년간 소화할 정도의 규모다. 하이엔드급 전기차에 주로 장착되면서 기술경쟁력도 확보했다. 또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매년 수천억원에 달하는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를 받는 것도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한국기업에 단비다.

수주액 많지만 당장 발주가 문제

그런데 지금 배터리업계에는 장밋빛 전망은 사라지고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있다. 전기차용 배터리 주요 소재부품를 생산하는 업체의 고위 임원은 "수주는 많지만 최근 발주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며 "이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4분기 영업손실이 날 수도 있고 내년도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배터리 생산업체 고위 임원도 "수주는 수주일 뿐"이라며 "최근 전기차 수요가 줄면서 완성차 업체들의 재고가 늘고 있어 가동률을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 추세를 봤을 때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지만 업계는 "혹한기가 몇년 지속될지도 모른다"며 "이미 긴축경영에 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기차용 배터리산업 증가세가 주춤하고 있다.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은 552.2기가와트시(GWh)로 지난해 동기 대비 44% 성장했다. 이는 최근 6년간(2017~2022년) 평균 성장률 53.8%보다 10여%p 떨어진 수치다. 후방산업인 전기차시장도 비슷한 그래프를 보인다. 글로벌 전기차 인도량(9월 누적)은 966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6.3% 성장률을 나타냈다. 연간 전망치는 1377만대로 상반기 예측치 대비 100만대 이상 감소했다. 성장률도 36.4%에서 30.6%로 하향조정했다. 이는 최근 6년간 성장률 54.6%에 비해 크게 뒤진 값이다.

전기차가 주류시장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을 맞은 셈이다. 전체 완성차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인 침투율이 올해 15%를 상향한 16.2%로 전망되면서 소비자들이 전기차의 실용성과 대중적 수용성을 고민하게 되는 시기에 들어간 것이다. 전기차 침투율 15%는 초기 전기차 시장을 주도한 얼리어답터(빠르게 구입해 사용하는 성향의 소비자)의 구매수요가 끝나가고 있음을 뜻한다.

특히 지속되는 고금리 속에서 높은 전기차 가격이 수요를 주춤하게 만든다. 게다가 전기차 보조금을 감축하는 국가도 나오고 있다. 전기차 시장을 이끌어 온 중국은 보조금을 폐지했고 독일도 전기차 보조금을 줄였다. GM 포드 폭스바겐 등은 전기차 투자계획을 철회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내년 우리나라 13대 주력산업 전망에서 이차전지 수출은 글로벌 완성차의 전기차 생산목표 하향조정에 따른 수요 위축 영향으로 전년 대비 2.6%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 수출은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다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신증설 공장에서 생산이 확대돼 현지생산 물량으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전기차용 배터리부문에서 글로벌 업체 3개사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 주력인 리튬인산철(LFP)배터리보다 고가인 삼원계 리튬이온배터리를 상용화해 하이엔드급 전기차 시장에 주력해 기술경쟁력을 확보한 상태다. 우리 기업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읽고 대응해 나가고 있다. 적기 증설과 효율적 운영을 내세우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새 CEO는 취임사에서 그동안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한 양적성장에서 이제 내실을 다지는 질적성장을 강조했다. 수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LFP배터리도 2025년 상용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내년 상반기 이차전지 반도체 동시 부진

업계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IRA 변동 가능성이 있을 수 있지만 중장기 전기차 수요 성장세는 변화가 없다고 본다. 보조금을 줄인 유럽도 탄소중립이라는 친환경 정책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독일의 구매 보조금 축소는 전기차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할 필요도 있다. 충전 인프라 확대와 같은 다른 방식의 지원이 진행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내년 상반기가 걱정이다. 반도체 회복시기가 내년 1분기에서 상반기 이후로 늦춰지고 있다는 것이 현장 분위기여서다. 내년 상반기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모두 부진한 시기가 되는 셈이다. 특정산업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로서는 어려운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범현주 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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