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경영계, 정부 뒤에 숨기만 해서야

2023-12-20 11:21:41 게재
윤석열정부는 지난 3월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도록 '1주 52시간제'(기본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의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MZ세대 등 국민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치자 철회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 정부 부처간 혼선을 빚었고 윤석열정부의 노동개혁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노동개혁은 노동시장의 의식·제도·관행 전반을 개선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한 근로시간 개편을 추진하면서 노사를 배제한 채 몇몇 전문가들로 구성된 '미래노동시장노동연구회'가 마련한 권고안을 토대로 만들었다가 좌초한 것이다. 정부가 효율성을 내세우면서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무시한 결과다. 이는 이제 정부 주도의 일방적 개혁 추진은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더 큰 문제는 경제주체인 경영계가 노동현안마다 정부 뒤에 숨었다는 점이다. 사용자와 쟁의행위의 범위를 넓히고 파업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개정)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일단락됐다.

사실 노란봉투법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사내하청·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급증하면서 사업장 중심의 전통적인 사용자의 범위로는 담을 수 없는 변화된 노동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진짜 사장'이 소환된 배경이다.

하지만 경영계는 바뀐 노동현실을 외면하고 노란봉투법이 "노사관계를 파탄내고, 산업생태계를 뿌리째 흔들어 미래세대의 일자리까지 위협하는 악법"이라며 반대만 했고, 결국 '대통령의 거부권'에 기댔다.

또 2021년 1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이 제정돼 3년을 유예했음에도 5~49인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을 몇달 앞둔 지금 2년 더 유예하자며 정부와 국회 로비에만 집중하고 있다.

두 사안에 대해 경제6단체는 연일 반대 성명을 내고 기자회견만 했을 뿐 대안을 제시하며 정부와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성장, 저출산·고령화, 디지털 기술 발전과 기후위기에 따른 산업대전환 시대를 맞아 이에 걸맞는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등 새로운 노동질서를 만들어 가야하는 데도 경영계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서지 않았다.

오죽하면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한 토론회에서 "사용자들이 정부가 노사정 대화를 주도해주길 바라지 자기들은 나서지를 않는다"고 질타했을까. 최근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복귀하면서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재개되고 있다. 경영계의 보다 전진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할 때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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