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영입에 목매는 보수정치권

2023-12-26 10:51:22 게재
국민의힘이 평생 검사로 살아온 한동훈 전 법무장관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자, 보수정치권에서는 "또 밖에서 데려오냐"는 자조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보수정치권의 제식구는 하찮게 보면서 외부 영입인사의 몸값은 높게 쳐주는 오랜 습관에 대한 아쉬움이다.

보수정치권은 제식구보다 새 얼굴에 집착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1996년 총선을 앞두고 이회창 전 대법관을 선대위원장으로 내세웠다. 집권여당의 얼굴만 '대쪽 판사'로 갈아끼운 것이다. 보수정치권의 눈속임은 총선에서는 한차례 통했지만, 이후 두차례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날카로운 검증망을 돌파하는 데 실패했다. 유권자는 대쪽 이미지만 내세울 뿐 실물정치 경험과 민주주의 소양이 부족했던 이 전 대법관을 선택하지 않았다. 보수정치권은 '10년 야당'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보수정치권은 또다시 외부영입에 목을 맸다. 보수정치권이 수십년에 걸쳐 키워낸 정치인 대신 '권력에 맞선 검사' 이미지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선택했다. 대선에서는 간신히 이겼지만 검증되지 않은 리더십을 택한 후과는 톡톡히 치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집권 1년 7개월 동안 대화와 타협, 설득, 통합을 기본으로하는 '정치 리더십'은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대신 대결과 갈등, 독선, 오만의 '검사 리더십'만 고집하면서 보수정치권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총선 참패'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이유다.

검증 안된 외부영입으로 위기를 초래한 보수정치권이 또다시 '한동훈 카드'를 승부수로 택했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검증된 보수정치인을 앞세워 위기를 정면돌파하지 않고, 새 얼굴로 잠시 눈속임하겠다는 속셈으로 읽힐 뿐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검사에서 하루아침에 보수정치권을 대표하는 얼굴이 됐다. 벌써부터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꼽힌다. 보수정치권의 습관성 영입 전략이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제식구의 실력은 믿지 못하면서 집밖의 명성에만 편승하려는 꾀가 이번에는 통할 수 있을까. 확신하기 어렵다. 이회창·윤석열 카드와 마찬가지로 한 비대위원장도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의 총선 위기는 '조선제일검' 이미지로 돌파한다고 해도 대선까지 롱런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보수정치권에는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오세훈 이준석 김태흠 이철우 박형준 같은 경륜과 실력을 겸비한 정치인이 많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밖에서 대안을 찾으려 하지 말고, 먼저 집안에서 보수의 미래를 탐색하길 권한다. 답은 늘 내부에 있기 마련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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