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투자에 눈뜨나 … 작년 이후 가계 투자자산 급증

2023-12-26 11:02:15 게재

주식 등 투자 비중, 금융자산 증가의 80%

가계 보유 외화자산도 최대 700조원 육박

미국·유럽 등 대비 여전히 현금·예금 선호

현금과 예금을 선호하는 일본 가계의 자산운용 흐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전히 미국이나 유럽 등의 국가에 비해 현금과 예금 보유비중이 압도적이지만 최근 1년만 놓고보면 주식 등 투자자산에 대한 선호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낮은 예금 금리로는 빠르게 오르는 생활물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 자산운용의 패턴이 변화하는 것이라는 진단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6일 "개인투자자산의 증가가 자본시장에서 투자를 견인하고 있다"면서 "가계 금융자산 증가분의 80%를 투자관련 자산이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행 자금순환통계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일본 가계의 금융자산 총액은 2121조엔(약 1경9300조원)에 달해 역대 최고 수준을 보였다. 이 가운데 주식과 펀드 등 투자자산은 427조엔(약 3900조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24%(82조엔)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금융자산 증가액(100조엔)에서 투자자산 증가가 82%를 차지하는 셈이다.

일본 가계가 빠르게 투자에 눈을 돌리는 추세는 최근 10년간 추이를 보면 확인된다. 최근 10년간 일본 가계의 투자부문 자산은 160조엔 증가했는데, 절반이 지난 1년간 늘어났다. 신문은 "투자자산의 급증 배경에는 미국과 일본 주식시장의 상승에서 찾을 수 있다"며 "닛케이평균 주가가 27% 상승해 버블경제 붕괴 이후 최고치를 보였고, 엔저에 따라 해외투자 수익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런던증권거래소를 운영하는 LSEG에 따르면, 미국 S&P500지수를 엔화로 환산할 경우 올해 상승률은 35%에 달해 달러표시 상승률(24%)을 크게 웃돈다.

성탄절인 25일 일본 도쿄의 한 증권사 시황판 앞을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일본 개인투자자의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닛케이평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 등으로 2009년 3월 7054포인트까지 떨어지는 등 역대 최저수준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이 크게 났고, 주식 등 투자에 대한 인식이 소극적으로 바뀌었다는 진단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일부 바꾼 정책이 이른바 '아베노믹스'이다. 아베 정권의 초저금리 정책과 유동성 확대 등으로 주식시장이 살아나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투자에 대한 선호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우에노 타케시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의 30대 이하는 주식투자에 대한 알러지가 적은 편"이라며 "아베노믹스가 본격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가 올해 3분기 가계의 금융자산 흐름을 분석한 결과, 예금은 전분기 대비 4400억엔 감소했지만 펀드 등으로 유입된 금액은 2500억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소는 "일본 가계가 조금씩 저축에서 투자로 흐름이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가계의 금융자산에서 현금과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일본은행과 SMBC닛쿄증권에 따르면, 금융자산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12.5%)과 유로권(35.5%)에 비해 일본(52.5%)이 압도적으로 높다. 니혼게이자신문은 "물가가 내려가는 디플레이션 시대에는 현금과 예금의 실질적 가치가 올라갔기 때문에 현금과 예금에 대한 신앙은 합리적이었다"며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2%를 웃도는 추세가 계속되고, 예금금리가 거의 0%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실질적인 가치는 하락한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그러면서 "지금은 가계가 투자로 눈을 돌리기 쉬운 시기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일본 가계의 금융자산에서 외화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9월 말 기준 일본 가계가 해외에 보유한 채권과 주식, 펀드 등의 잔액은 74조2000억엔(약 670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외화예금은 6조6000억엔으로 전년 동기 비슷한 수준을 보였지만, 증권투자(25조8000억엔)와 투자신탁(41조6000억엔) 등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7%, 19% 이상 증가했다.

이와 관련 일본 정부와 금융시장에서는 내년 1월부터 시행하는 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의 확대로 적립식 투자금액이 연간 4조5000억엔 (약 41조원) 가량 추가로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증가하는 투자금액의 절반은 미국 주식 등 해외자산에 투자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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