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산업통상자원부의 봄'을 기대하며

2023-12-28 10:48:39 게재
영화 '서울의 봄'이 인기다. 누적 관객수는 1000만명을 훌쩍 넘었고 관람객평점은 9.6점에 이른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서울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 것도 잠시 12월 12일 군사반란으로 대한민국의 운명이 바뀐 이야기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통령과 국방부장관, 육군참모차장의 우유부단함과 무능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넘어 허무함과 분노를 더한다.

침소봉대(針小棒大)처럼 들리겠지만 요즘 산업통상자원부 상황과 오버랩(overlap) 되는 부분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산업부는 우리 산업과 기업이 세계시장을 주도할 수 있도록 전략산업 육성 및 규제혁신, 수출증진, 안정적 에너지공급 등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부처"라고 했다. 새로운 바람이 불 것 같은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각종 위협과 우유부단, 무능이 판을 친다. 전 정부시절 추진했던 에너지정책(원자력발전·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감사가 수십명을 대상으로 십수개월간 지속됐다. 직원들은 불안함에 떨고 사기는 곤두박질쳤다.

산업부장관과 대외적으로 장관대우를 받는 통상교섭본부장은 타부처에서 왔거나 교수출신이 임용됐다. 중요한 산하기관 최고경영자(CEO) 역시 대부분 낙하산 인사다. 심지어 최근에는 취임 3개월도 안된 장관을 내년 총선 차출을 이유로 경질했다. 현안해결은 차치하고 직원들 이름과 얼굴을 익히기도 전에 부산엑스포 유치전에 올인하다 퇴장하는 모양새다. 산업부 안팎에서는 "현 정부가 산업부를 얼마나 한가하게 보는지 알 수 있는 단면"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중국 요소수 파동, 유럽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을 뒷수습하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현정부 첫번째 산업정책인 산업대전환 발표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신임 장관 후보자인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에 대해서도 '기대반 우려반'이다. 산업부장관은 실물경제와 에너지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인데 통상전문가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지금 우리경제엔 세계화 퇴조에 따른 공급망 교란으로 수출·투자환경의 불확실성이 팽배하다. 기존 국제질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경제적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이익을 지켜내야 한다. 에너지는 요금정상화와 에너지안보, 탄소중립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를 함께 안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위협을 중단하고, 우유부단함과 무능을 배제하는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산업부를 존중하고, 리더를 바로 세우고, 직원 사기를 진작시켜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살고, 국민들이 먹고살기 편해진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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