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전환 가속, 오일피크 앞당긴다

2023-12-29 10:52:32 게재

경제성·첨단기능에 소비자 선호 급증 … 블룸버그 "석유수요 하락 부채질"

블룸버그통신 산하 연구기관인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중국은 전세계 전기차 판매량의 절반에 가까운 1800만대 이상을 자국에서 판매했다. 이는 미국보다 4배 이상 많은 수치다. 블룸버그는 2026년 중국 신규 승용차 판매량의 50% 이상이 전기차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은 1/4이 조금 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급속한 전기차 전환은 자동차산업을 훨씬 뛰어넘는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대학교의 지속가능성 교수인 로버트 브레차는 블룸버그에 "중국의 현재 전기차 성장률이 향후 10년간 유지된다면 전세계 석유 소비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다. 지난 20년간 석유소비 증가는 국제유가를 배럴당 100달러대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운송부문은 중국 전체 석유소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따라서 전기차 공급 증가로 연료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국영 석유대기업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최고경영자인 저우 신후이는 지난 8월 "에너지업계는 올해 중국 석유소비가 사상최고치에 도달할 것이라는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인도 등 석유수요를 대체할 수 있는 국가들은 중국처럼 막대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때문에 러시아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는 구조적 유가하락의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석유시장 분석가인 시아란 힐리는 "중국은 지난 10년과 같은 석유수요 증가를 보장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석유수요 정점 예측, 특히 중국에서의 오일피크 예측은 오랜 역사를 통해 시기상조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중국 최대 국영석유회사인 중국석유공사(CNPC)는 2017년 중국 석유소비량이 연간 6억9000만톤에서 정점을 이룰 것으로 예측했다. 이듬해에는 7억톤으로, 그 다음엔 7억4000만톤으로 상향조정했다. 현재 전망치는 7억8000만톤으로 다시 올랐다.

블룸버그는 "중국의 전기차 보급률이 계속 급증할 것이라는 가정이 전제돼야 석유수요가 정점을 찍을 수 있다"며 "중국에서 전기차가 진정으로 보편화되려면 도시에서만 운행되는 게 아니라 광활한 내륙에서도 운행될 수 있어야 한다. 또 얼리어답터에게만 어필할 것이 아니라 사회계층의 위아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세계 석유 소비에 큰 타격"

블룸버그는 최근 동부해안 상하이에서 산업도시 우한을 거쳐 중국의 외딴 산악중심지 난창에 이르기까지 2098㎞를 전기차로 달리며 중국 오일피크 가능성을 엿봤다.

중국 전기차는 1번 충전으로 1000㎞를 달릴 수 있는 초호화 양왕SUV부터 약 120㎞를 달릴 수 있는 기본형 우링홍광미니까지 다양한 형태와 크기로 출시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그 중간대인 300㎞ 주행거리 전기차인 비야디의 친(Qin)을 선택했다. 제조사에 따르면 친은 최초로 100만대 판매를 돌파한 A급 세단 전기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주유소는 기존 화석연료 회사들도 전기차 전환에 베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초기 지표다. 중국 최대 정유사인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시노펙)가 운영하는 주유소에는 휘발유와 디젤 주유기뿐만 아니라 약 20개의 전기차 충전기와 컨테이너 크기의 배터리 교체 스테이션이 설치돼 있다. 하루 24시간 전기차 충전이 가능하다.

최초의 다목적주유소라는 실험적인 수준을 넘어 현재는 주요 전기차 관련 서비스로 성장했다는 평가다. 상하이 시노펙 충전소에서 일하는 한 관계자는 "앞으로는 아무도 휘발유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기차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시노펙 충전소와 같은 시설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미국 등 다른 나라와 달리 충전소를 찾지 못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중국에는 전세계 가장 많은 약 250만곳의 공공충전소가 있다.

충전소 네트워크의 급속 성장은 국가적 계획과 민간기업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다. 중국 국가전망공사 등 거대 국영기업은 충전기를 보급하는 임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칭다오 티굿 일렉트릭(특예덕전기) 같은 민간기업들은 최적의 장소를 조기에 확보하기 위해 충전소 건설에 뛰어들었다. 중국에서 구글맵에 해당하는 바이두의 매핑소프트웨어는 이 모든 것을 통합해 어디로 가야 충전이 가능한지 지속적으로 알려준다. 충전 결제는 앱이나 유비쿼터스 위챗 플랫폼을 통해 이뤄진다.

전기차 충전시간은 빨라지고 있지만, 휘발유를 넣는 것과 비교하면 아직은 더뎠다. 휘발유를 넣는 데는 1~2분 정도 걸리지만, 전기차를 충전하는 데는 보통 50분 정도 걸린다. 블룸버그는 2000여㎞를 달리는 동안 충전을 위해 정차한 횟수가 11번, 총 충전시간은 5시간52분이 걸렸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충전을 위한 잦은 정차가 전기차 도입에 걸림돌이 될지 여부는 운전습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미국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개념은 자동차여행과 길게 뻗은 탁 트인 도로인 데 반면, 중국에서는 고속도로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났다. 또 대부분의 대륙횡단 여행은 고속철도로 이뤄진다"고 전했다.

일상적으로 장거리운전을 하는 중국 사람들에겐 시간적 손실을 돈으로 만회할 수 있다는 점이 전기차의 매력이다. 중국 안후이성에서 거위농장을 하는 리융은 농장에서 수백㎞ 떨어진 고객들에게 고기를 배송한다. 국유기업 창안자동차의 전기차를 사용하는 리융은 휘발유차보다 연료비를 80% 정도 절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 가격대가 낮아지면서 휘발유 차량보다 더 저렴해졌다. 리융은 "전기차는 너무 편리하고 비용도 절약된다"며 "이제 휘발유차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중국 중고전기차 판매기업 '일렉트릭 래빗'의 창업자 리룽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기후문제가 전기차 구매의 요인이 아니다. 비용 절감과 최첨단 기능 요인이 더 크다"고 말했다.

중국 전기차 보급, 자체 동력으로 순항

전기차 전환이 지속 가능하려면 매번 배터리를 처음부터 새로 만들 수는 없다. 금속가격 조사기관인 '패스트마켓츠'의 줄리아 하티에 따르면 새로운 리튬이온배터리 수요는 2023년에서 2033년 사이 약 5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채굴뿐만 아니라 재활용이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 후베이성 징먼시에 있는 거린메이주식유한공사(GEM)는 세계 최대 배터리 재활용 업체 중 하나다. 기계적 분쇄와 화학 반응을 통해 중고배터리 케이스에서 알루미늄과 구리를, 배터리셀 내부에서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 금속을 뽑아낸다. 거린메이 공장 매니저인 자오 쑤안은 "금속에 따라 다르지만 회수율은 원석의 약 92%에서 99%에 달한다. 품질은 채굴된 제품과 구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거린메이는 현재 하루에 약 60톤의 중고배터리를 처리하고 있지만, 전기차 보급 확대로 재활용이 필요한 배터리가 늘어나면서 약 300톤까지 처리용량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블룸버그는 "중국 전기차 붐은 당초 정부보조금으로 촉발됐지만 이제는 경제성과 소비자 선호 등 자체적인 동력으로 순항하고 있다"고 전했다.

컨설팅기업 옥스퍼드에너지연구소의 선임연구원 앤더스 호브는 "휘발유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타자기에서 워드프로세서로의 전환과 유사하다"며 "언젠가 대다수 사람들이 전기차를 경험하게 되면, 사람들은 휘발유 자동차를 보며 '뭐 하는 거야? 왜 아직도 낡은 차를 몰고 다니지?' 하는 의문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피크오일이 실제 도래했는지에 대해 부정적이다. 세계 최대 석유트레이더인 '비톨그룹' 연구책임자 지오반니 세리오는 "내년에도 중국에서 휘발유 자동차가 1100만대 판매될 것으로 전망한다"며 "전기차가 전체 자동차 판매량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더라도 차량의 형태가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세리오 역시 "피크오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은 의심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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