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범죄환경 변화 대응할 체계 마련을

2023-12-29 10:52:32 게재
"최근 대규모 범죄조직은 위계서열이 아닌 네트워크 방식으로 활동한다. 또 질서정연한 기업체계를 활용하기 때문에 비즈니스에 좋지 않는 폭력을 피하기까지 한다. 이제 마피아나 갱단 같은 과거 사례는 잊어야 한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초국가적 조직범죄 방지를 위한 포럼'에 참석한 캐나다 검사 출신 피터 저먼 국제형법개혁 및 형사정책연구센터장(ICCLR)이 한 말이다.

조폭범죄 양상이 변하고 있다. 지난 20일 올해 하반기 4개월간 조폭 집중단속을 벌인 경찰청은 이 기간 1183명을 검거했는데 이중 기업·지능형 범죄자가 44%(520명)를 차지했고 폭력·갈취 행위자는 26%(310명)였다고 밝혔다.

자금세탁과 범죄수익환수를 담당하는 한 검찰 간부는 요즘 범죄는 변호사나 회계사가 개입해 합법적 장치를 해놓기 때문에 적발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초국가적 조직범죄 자금세탁조직(GMLO)이 가세하면서 '스테로이드 맞은 돈(빨리 유통되는 자금)'은 다크웹, 인공지능(AI), 가상자산, 국적 미상의 기업까지 활용한 이들에 의해 국경 없이 넘나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범죄자를 특정하는 것도 어렵고 물적증거도 나오지 않아 처벌을 못하고 있다면서 "해외 재산 압수나 환수는 더 힘들기 때문에 관련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양상은 금융정보분석원(FIU) 자료에서도 엿볼 수 있다. 2021년 88만4655건이었던 금융 의심거래보고(STR)는 2022년 82만2644건으로 줄었다. 반면 가상자산사업자의 의심거래보고는 2022년 1만797건에서 올해는 9월까지 1만1646건으로 늘었다. 금융당국이 자금세탁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검·경은 범죄수익환수부와 추적 전담팀을 꾸렸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전문가들은 우선 각 기관별로 분산된 추적 기능의 통합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현재 자금세탁 방지시스템은 첨단화하는 범죄를 따라가기 벅찬 구조라는 것이다. 지금 자금세탁 금융거래는 FIU, 부동산은 한국부동산원, 외국환·귀금속은 기획재정부, 대외무역은 산업통상자원부, 전자상거래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특히 역할이 강조되는 FIU는 금융거래 외에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관여를 못하고 있다. 게다가 FIU가 금융기관 감독관청 밑에 설치된 것에 대한 적정성 논란도 있다.

자금세탁 처벌을 강화하는 법 개정과 함께 범죄 몰수물의 가치 등락을 고려해 수익처분할 수 있는 집행청이나 기금 설치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범죄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체계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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