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보호로 망친 US스틸 … 미국 또 정부개입?

2024-01-04 11:21:13 게재

"보호무역에 혁신 외면"

지난달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정치권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이를 규탄하고 나섰다. 셔로드 브라운, 존 페터만, 조쉬 홀리, 마르코 루비오, J.D. 밴스 등 공화당 소속 미상원 의원들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바이든정부에 이 거래를 무산시켜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이에 대해 미국 월간지 '리즌'은 3일 "정부 개입으로 US스틸을 구할 수 없다"며 "수십년에 걸친 보호주의정책이 오히려 US스틸의 몰락에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초당파 싱크탱크인 '진보연구소(IFP)'의 브라이언 포터 연구원은 "US스틸은 설립 당시부터 실망스러운 기업이었다"며 "회사 규모가 너무 커 관리가 어려웠고, 지난 100년간 제철기술의 주요 발전단계마다 뒤처졌다"고 지적했다.

2차세계대전 이후 US스틸은 유럽과 일본의 산업기반이 상당부분 파괴된 탓에 전세계적인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1960년대와 1970년대 초 이미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포터 연구원은 "1971년 당시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제치고 세계최대 철강기업으로 부상하자, US스틸은 경영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외국기업의 '불공정한' 무역관행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하는 것으로 대응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연방정부는 지난 50여년 동안 US스틸을 지원하기 위해 각종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 카토연구소 무역정책연구 센터장 스콧 린시컴은 2021년 보호무역이 US스틸을 어떻게 망쳤는지에 대한 글에서 "정부 개입으로 US스틸은 외국산 철강 수입제한, 수백억달러의 연방·주·지자체 보조금과 구제금융, 환경규제 면제, '미국산 구매' 특별규정, 연방연금혜택 보장 등 다양한 혜택을 누렸다"고 지적했다.

정부 개입과 지원이 US스틸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현재 US스틸은 1950년대 중반 전성기에 비해 생산량은 1/3로, 직원은 1/10로 줄었다. US스틸은 2014년 S&P500지수에서도 탈락했다. 일본제철의 인수가 발표되기 전 US스틸의 기업가치는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 중 690번째에 불과했다.

포터 연구원은 "US스틸 기업가치는 레스토랑체인 '텍사스 로드하우스'에도 뒤처진다. 직원 수는 온라인 반려동물 관리기업 '츄이(Chewy)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US스틸이 실력이 아닌, 브랜딩과 로비력으로 생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보수성향 매체 '내셔널리뷰'는 US스틸 창업자들이 잘한 1가지는 기업명에 '미국(US)'을 넣은 것"이라며 "순수 민간기업인 US스틸이라는 브랜드는 다른 나라 기업이 이를 인수할 경우 미국 전체에 나쁜 일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US스틸의 워싱턴 정가 로비력도 한몫하고 있다. 포터 연구원은 "US스틸은 설립 초기부터 규모를 앞세워 다른 철강기업들을 괴롭혔다. 이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자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 소비자들이 값싼 외국산 철강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워싱턴 정가를 움직였다"고 지적했다.

리즌은 "US스틸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혁신하지 않았다. 혁신이 필요한 시점에 보호주의에 기댔고 결국 실패했다. 외국기업에 매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 또 다시 정부가 개입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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