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자, 전기차 외면 추세

2024-01-05 10:52:22 게재

비싼 가격, 주행거리 불안에

블룸버그 "당파적 견해도 한몫"

1년 전만 해도 전기차는 미국 자동차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순수 전기자동차의 미래가 곧 다가올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미국 자동차 구매자들이 전기차에 반신반의하고 있다. 전기차 판매 성장세가 꺾이면서 딜러 매장에 재고가 쌓이고 있다.

4일(현지시각)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BBW)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기차 개발에 1000억달러 이상을 쏟아부은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현재 전기차 가격과 생산량, 수익 예측치를 속속 낮추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콕스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자동차 딜러 매장의 배터리 구동 전기차 재고는 지난 1년 동안 2배 이상 늘어 지난달 초 114일분에 달했다. 사상 최고치다. 내연기관차를 포함한 전체 자동차는 71일분이었다.

미 전역 약 4000명의 자동차 딜러로 구성된 '전기차 고객의 목소리'라는 단체는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약 7%에 불과한 전기차 판매 비중을 2030년까지 절반 이상으로 올리라는 정부의 비현실적인 의무정책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미국 고객들은 대신 내연기관과 배터리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딜러들은 하이브리드 재고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요타와 포드 등은 수요를 맞추기 위해 하이브리드 생산을 늘리고 있다. 동시에 내연기관 자동차도 미국 자동차 판매량 10대 중 8대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여전히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자동차 전문 리서치기관인 '에드먼즈닷컴'에 따르면 전기차 평균가격은 6만544달러로 휘발유 자동차보다 약 1만3000달러 비싸다. 자동차 대출이자가 상승하면서 부담이 더 커졌다.

UBS 전망에 따르면 미국의 연간 전기차 판매 성장률은 2022년 60%였지만 지난해엔 47% 증가에 그쳤다. 올해는 11%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포드는 자사의 대표 전기차인 F-150 픽업트럭의 올해 생산 계획을 절반으로 줄였다. 제너럴모터스(GM)도 쉐보레 이쿼녹스 SUV와 실버라도 픽업트럭 등 전기차 생산을 연기했다. 테슬라는 지난해 전기차 모델 가격을 거듭 인하했다.

많은 소비자들은 비용 외에도 전기차 주행거리 불안을 지적한다. 오클라호마 등에서 자동차 딜러를 하는 미키 앤더슨은 "전기차 도입 초기 구매자가 몰린 이유는 최신 기술을 원하거나 가족을 위해 추가차량을 구입하는 부유한 얼리어답터(최신제품을 먼저 구입해 써보는 사람)가 많았기 때문"이라며 "자동차를 일상적인 이동수단으로 사용하는 주류 구매자들은 전기차가 '더 비싼데 덜 유용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약 320㎞에 달하는 내 출퇴근 거리에 전기차 충전소가 단 1곳밖에 없다"며 "보다 안정적인 충전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동차 리서치회사인 '스트래티직 비전'이 25만명의 자동차 구매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배터리 구동 전기차에 관심없다는 응답은 2022년 42.2%였지만 지난해엔 50.7%로 상승했다. 스트래티직 비전 대표 알렉산더 에드워즈는 "최근 전기차 구매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전기차의 비싼 가격과 주행거리 제한 때문에 전기차에 대한 '본원적 수요'(intrinsic demand)는 없다. 5만5000달러를 지불하면서까지 주행거리를 걱정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전기차 수요를 가로막는 또 다른 장애물은 당파성이 가미된 문화전쟁이다. 민주당 소속 대통령인 바이든은 기후변화 대처 일환으로 전기차 부문에 수십억달러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바이든정부는 2032년까지 신규 승용차 판매의 3분의 2를 순수 전기차로 채울 계획이다. 하지만 백악관 재입성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정부 계획을 '터무니없는 전기차 사기'라고 비판하며 전기차가 미국인 일자리를 없애고 자동차 제조사들을 문 닫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포드 회장인 빌 포드는 지난해 10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파란색 주(민주당 우세 지역)에서는 기후변화 대처를 위해 가능한 한 빨리 전기차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일부 빨간색 주(공화당 우세 지역)에서는 전기차를 백신과 같다며 우리는 윈치 않는데 정부가 목구멍으로 밀어넣고 있다고 말한다"며 "전기차가 이렇게까지 정치화되는 날을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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