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개발붐, 설비투자·생산성 제고까진 '아직'

2024-01-09 10:50:40 게재

영국 이코노미스트 "수요 과장됐거나 기업채택에 시간 걸릴 듯"

많은 경제학자들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세계경제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본다.

리서치기업 에퍽(Epoch)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인간의 노동력을 광범위하게 대체할 수 있는 AI를 통해 국내총생산이 급증하는 '폭발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에릭 브린욜프손 교수는 "향후 수년 동안 AI가 생산성 붐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같은 경제적 변화가 일어나려면 기업들이 새로운 소프트웨어와 통신, 공장, 장비 등 생산공정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AI를 도입해야 한다. 트랙터나 개인용컴퓨터(PC) 등 이전의 기술혁신이 경제전반에 확산되기 위해서는 투자 붐이 필요했다. 1992~1999년 미국의 산업·상업 투자는 GDP의 3%로 늘었다. 컴퓨터기술에 대한 기업의 자본지출 증가 덕분이었다.

하지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8일 "아직까지 AI 도입에 따른 과감한 투자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기업의 자본지출은 현저히 약한 추세"라고 지적했다.

물론 생성형 AI 개발에 직접 관련된 기업들의 투자는 급증 추세다. 올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자본지출비(연구개발 포함)는 전년 대비 20%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AI칩을 개발·생산하는 엔비디아는 30% 이상 급증할 전망이다. 메타 대표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해 말 "2024년 우리의 최대 투자처는 AI 부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MS와 엔비디아처럼 AI 혁명을 주도하는 기업을 제외한 다른 기업들은 소극적이다. S&P500에 속한 기업들은 올해 설비투자를 전년 대비 약 2.5% 늘릴 계획이다. 이는 인플레이션에 준하는 수준이다. 골드만삭스가 예상한 올해 미국기업들의 설비투자액은 전년 대비 4% 하락할 전망이다. 또 지난해 3분기 미국기업들의 '정보처리 장비·소프트웨어' 투자는 전년동기 대비 0.4% 감소한 바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국가계정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3분기 기준 각국의 투자지출(정부투자 포함)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더디게 늘고 있다.

JP모간체이스가 구매관리자지수(PMI)를 기반으로 글로벌 설비투자 추이를 분석한 결과 설비투자와 생산성 향상 조짐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유럽연합(EU) 서비스부문 기업들의 올해 투자의향은 2022년 초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영국기업들은 올해 설비투자액을 3% 늘릴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는 2022년 초 10%에서 대폭 줄어든 수치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2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첫째는 생성형 AI 수요가 과장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역사에서 암호화폐와 메타버스 등 기술기업들이 새로운 혁신에 대한 수요를 과대평가한 사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르면 거대 기술기업들이 수백억달러를 들여 AI 관련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지만 이를 사용할 고객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새로운 범용기술을 채택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 사례가 PC다. MS는 1995년 획기적인 운영체제(OS)를 출시했지만, 미국기업들은 1990년대 후반에야 OS소프트웨어 지출을 늘렸다. 골드만삭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AI가 1~2년 내 사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 최고경영자는 5%에 그쳤다. 65% 응답자는 향후 3~5년 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AI가 경제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높지만, 쾅하고 터지는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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