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한국 부동산개발금융의 한계

2024-01-11 11:29:03 게재
시공능력평가 16위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정부가 2만가구에 달하는 수분양자와 581개 협력업체 피해를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내집마련을 꿈꾸던 서민의 피해는 불가피해 보인다. 태영건설은 아파트 브랜드 데시앙으로 주택시장에서 인기를 끌었고 하수처리시설 시공능력 최선두에 오른 건설사다. 이같은 굴지의 건설사가 왜 부실의 늪에 빠졌을까.

이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부동산 개발방식이 빚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국내 부동산 개발사업은 IMF 외환위기 전후로 갈린다. 1980년대는 건설사가 시행과 시공을 겸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발생해 IMF 구제금융이 시작되자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고 땅을 보유하고 있던 건설사들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후 건설사의 재정건전성 확보가 강조되면서 땅을 사서 개발하는 사업은 시행사가 맡고 건설사는 시공만 하게 됐다.

하지만 영세한 시행사는 자금이 부족했고 금융권은 신용도가 낮은 개발업체에 쉽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은행은 건설사가 연대보증을 서면 시행사에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이때부터 건설사는 시행사에 다양한 방식의 보증을 제공하고 시공권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개발사업에 참여했다.

이같은 방식의 부동산 개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금융권은 사회기반시설(인프라) 개발과 선박 대출에만 활용하던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부동산 대출에 적극 도입했다. 부동산개발시장에 시행사 전성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토지비는 전체 개발비의 20~30%에 불과해, 대출만 받으면 일확천금을 벌 수 있는 때였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가 닥쳤다. 연대보증을 섰던 건설사들이 다시 무너졌다. 시행사가 땅을 사는 과정에서 빌린 자금(브릿지론)에 대한 연대보증을 선 것이 부실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금 부동산개발 시장에서 더 큰 문제는 이 브릿지론과 본PF가 부실하게 얽혀있다는 점이다. 인허가를 받아 착공에 들어가면 본PF를 일으킬 수 있다. 이 대출금은 실제 공사비에 투입해야 할 자금이지만 토지매입비로 빌린 브릿지론을 상환하는 데 쓰인다. PF대출 과정에서 건설사는 책임준공 확약 등의 보증을 서야 한다.

태영건설은 이 복잡한 금융거래에 얽혀 브릿지 1조2193억원, 본PF 2조3800억원, 책임준공확약 1조5580억원의 보증을 섰다. 2023년 3분기 기준 현금성자산 5011억원에 비해 보증규모가 천문학적이다.

태영건설 사태에서 보듯 국내 부동산 개발방식과 금융시스템은 후진적이다. 미국의 경우 PF자금을 브릿지론 회수에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PF대출 시스템을 전면개편해야만 건설사 체질개선이 가능해 보인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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