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주요 해상항로 통제권 과시하나

2024-01-12 11:00:19 게재

미국 유조선 나포 파장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상 선박 공격에 이어 이란이 11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 유조선 '세인트 니콜라스호'를 나포하면서 세계 주요 교역로 두곳이 동시 위기에 빠지게 됐다.

이란이 해당 유조선이 자국 석유를 훔쳐 미국에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은 "정당한 사유가 전혀 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쿠웨이트, 이라크,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산유국의 해상 진출로다.

세인트 니콜라스호의 피랍 상황은 영국 해사무역기구(UKMTO)에 의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UKMTO는 이날 상황이 이른 아침 오만과 이란 사이의 해역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UKMTO는 선장과 통화 중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으며, 이후 재차 통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영국 해사보안 업체 앰브레이는 "유조선 세인트 니콜라스호에 6명의 군복차림 남성이 승선했고 이들은 곧바로 감시 카메라를 가렸다"며 선박자동식별장치(AIS)도 꺼졌다고 전했다.

이 선박은 튀르키예 정유업체 알리아가로 운송할 석유를 싣기 위해 이라크 바스라 인근 해상에 정박해 있었고, 이후 방향을 바꿔 이란의 반다르 에-자스크로 향했다.

이와 관련, 튀르키예 국영 석유회사 투프라스는 나포된 세인트 니콜라스호에 대해 "투프라스가 이라크 석유수출공사(SOMO)에서 구입한 14만t의 원유를 싣고 바스라항구에서 우리나라의 정유소로 오던 중이었다"는 입장을 냈다.

세인트 니콜라스호를 운용하는 그리스 선사인 엠파이어 내비게이션은 이 배에 그리스인 1명과 필리핀인 18명 등 모두 19명이 승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셜 제도 선적의 이 배는 지난해 제재 대상인 이란산 석유 밀수에 연루된 적도 있다.

당시 선명이 '수에즈 라잔'이었던 이 선박은 제재 대상인 이란산 원유 98만 배럴을 싣고 있다가 미 당국에 적발됐다. 엠파이어 내비게이션은 지난해 9월 혐의를 인정하고 240만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이 벌어진 뒤 예멘 반군은 하마스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홍해를 지나는 상선을 30차례 가까이 공격·위협했다. 이에 세계 주요 해운사가 '홍해-수에즈 운하-지중해' 항로를 기피하면서 그 여파로 해상 운송이 타격받고 있다.

예멘 반군이 사실상 이란과의 연계 속에 홍해상 군사 행동을 감행한다는 점에서 이란이 글로벌 교역의 통로인 홍해와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동시에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란이 가자지구 전쟁을 비롯해 헤즈볼라 지휘관 폭사, 시리아 친이란 시설 폭격 등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경고한 만큼 이번 나포가 '보복'의 신호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중동과 이집트, 서아시아 등을 담당하는 미군 중부사령부는 이날 예멘 반군이 아덴만을 지나던 상선에 대함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으나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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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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