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인물값 하는 후보를 내놓을 의무

2024-01-23 10:52:43 게재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공천시스템을 가동하는 등 본격적인 선거 채비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정작 석달도 안남은 선거의 기본틀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느긋해 보인다. 선거구 조정은 물론이고 비례대표를 어떻게 선출할지도 아직 결정하지 않고서도 말이다.

전국단위 선거에선 구도 이야기를 많이 한다. 유권자 마음이 여당을 돕자는 쪽인지, 아니면 혼을 내자는 쪽인지에 판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보수 지지층의 고정화가 심화되면서 예측이 무의미한 경우가 허다하다.

구도를 극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게 인물 요소다. 여야가 이번 선거를 어떤 태도로 임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얼굴이라 하겠다. 선대위원장이나 인재영입 등을 통해 조명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유다. 인물 됨됨이에 스토리가 가미되면 구도의 불리한 여건을 뛰어넘어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험지 출마를 통해 정치적 재기를 달성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선 여야 공히 '맞춤형 공천' 이야기가 많다. 여당은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유력 야당 의원을 겨냥해 이른바 '자객공천'을 준비한다고 한다. 섬뜩한 용어는 접어두고 상대를 거꾸러뜨릴 능력자인가가 관건이다. 자객도 나름의 자격이 있다. 그냥 알려진 사람 수준으로는 거사는 고사하고 공천권만 날리고 상대 몸값만 올려주기 십상이다. 상대에게 모욕주기 식의 공천은 정치를 우습게 만드는 요인 중에 하나다. 특히 운동권 정치 청산을 외치면서 그 자리를 검사 군단 또는 전향한 운동권 인사들이 들어간다고 하면 유권자 눈에 혁신으로 보이겠느냐 말이다.

야당에선 비명계 현역의원을 겨냥해 친명계 인사의 도전을 놓고 자객출마 운운한다. 미우나 고우나 당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자객'이라니. 계파간 심리적 거리감이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경기도 한 지역구를 놓고는 친명계 모 인사가 출마를 접더니 한 비례대표 의원이 서울 출마를 포기하고 원정출마 의사를 내비쳤다. 과거 민주당의 한 저명 인사가 지역구를 옮길 때마다 '뼈를 묻겠다'고 선언했다가 마지막 출마지역에선 '순살 치킨이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현역의원이 빠진 전략선거구 공천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민주당에게 유리하다고 평가 받는 지역이 다수다. 공천권 자체가 상한가를 칠 공산이 크다.

정당이 후보를 내세워 유권자 판단을 받겠다고 하는 것이니 공천은 그들 몫이지만 최소한의 상식선은 유지했으면 싶다. 아무리 구도 우위의 선거판이라 해도 인물에 대해 유권자가 수용할 수 있는 임계점이 있기 마련이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이명환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