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사우스, 세계질서에 균열 … 미·중패권 틈새서 존재감

2024-01-23 11:11:49 게재

경제·무역규모 등서 빠르게 선진국 넘봐

세계 인구 60% 달해 상당기간 경제 활력

정치불안·안보 이해관계 달라 한계론도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치열한 세계질서 재편기에 글로벌사우스 국가의 약진이 지속되고 있다. 경제와 무역규모에서 기존 선진경제권을 크게 위협하고 있고, 압도적인 생산가능인구 등으로 상당기간 경제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치와 안보상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미국과 중국 G2 틈새에서 제3의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2일 "글로벌사우스의 대두로 '구질서'가 공격받고 있다"면서 "글로벌사우스의 등장은 국제사회의 극이 북에서 남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기존의 상식을 덮는 '폴라시프트'로 규정했다.

폴라시프트는 지구와 같은 천체의 자전에 따라 극점이 어떠한 요인에 의해 현재의 위치에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기존 세계질서가 미국과 G7 등 선진경제권에서 중국은 물론, 글로벌사우스로 이동하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인도를 비롯한 글로벌사우스의 등장은 압도적 인구가 뒷받침하고 있다. 유엔이 추산한 2022년 전세계 인구는 80억명 수준이다. 이 가운데 중국을 뺀 신흥국을 포함하는 77개 국가(G77)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이른다. 인도는 지난해 단일국가 인구로 중국을 넘어섰다.

경제와 무역규모에서도 이들 글로벌사우스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인도의 2022년 국내총생산(GDP)은 3조3850억달러로 영국을 추월해 세계 5위로 올라섰고, 매년 6~7%대의 빠른 성장으로 2026년에는 독일과 일본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쓰비시종합연구소는 2040년 글로벌사우스의 경제규모가 미국과 중국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했다.

골드만삭스는 미래 경제를 예측하면서 전세계 국가별 GDP 규모에서 인도와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글로벌사우스 국가가 2050년 최소 3~4개 는 상위 10개국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2075년이면 나이지리아와 파키스탄, 이집트 등이 새롭게 진입해 글로벌사우스 국가가 최소 6개국 이상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무역규모는 이미 글로벌사우스 국가간 거래가 대세가 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에 따르면,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사우스 국가간 무역거래 규모가 2021년 기준 6조2000억달러에 달해 2005년 대비 3.5배나 증가했다. 이에 비해 글로벌사우스 국가와 미국을 비롯한 G7 등 선진경제권과 무역은 2021년 기준 4조5000억달러에 머물렀다.

이들 국가는 경제적 성장을 배경으로 안보와 군사 영역에서도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2022년 기준 이들 국가의 군사비지출 비중은 전세계 50%에 육박한다. 이에 반해 미국을 비롯한 G7 국가는 30년전 전세계 군사비 지출의 70%를 넘어섰던 것에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9월 브라질 해군은 "우리는 더 이상 단순한 자원제공 국가가 아니다"라면서 "2033년까지 원자력잠수함을 스스로 건조해 실전에 배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외교에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G7국가와 인도, 튀르키예 등의 정부당국자가 모여 우크라이나 종전에 대해 비공식 회의를 열었다. G7을 중심으로 마련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철수하는 평화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하지만 인도와 사우디 등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조기 종전을 위해 러시아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해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고 비공개 회동은 끝났다.

당시 회의에서 이들 신흥국가는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를 예로 들면서 서방의 '이중성'을 비판했다. 튀르키예 등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면서 서방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보였던 모습을 가자에서도 동일한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세계는 1945년 제2차세계대전 이후 전승국을 중심으로 만든 유엔이라는 국제질서를 기초로 안정과 번영을 누렸다"면서 "앞으로 인도와 아프리카, 중남미 등의 국가가 상임이사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유엔 안보리의 의사결정은 신뢰를 상실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들 글로벌사우스 국가가 향후 단일한 행동을 지속하는 데 어려움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해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정상회담에 24개국이 참여한 것은 2019년 37개국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신흥국 내부의 이해관계 차이에서 발생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올해 G20 의장국인 브라질이 다음달 외무장관 회담을 열어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문제 등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단일한 해법을 내놓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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