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정보·군 기관 출신 속속 영입

2024-01-25 11:24:44 게재

골드만삭스·라자드 등

전쟁·선거 불확실성 영향

각종 선거와 잦은 전쟁 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 환경이 불확실성과 변동성으로 불안해지면서, 정보기관과 군기관 출신을 찾는 금융기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24일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BBW)에 따르면 미국 마스터카드는 지난해 10월 영국 정보기관 'GCHQ'의 전 책임자였던 제레미 플레밍을 고용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글로벌 투자기업인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는 CIA 국장 출신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를 파트너로 영입했다.

자산운용사 슈로더는 전 영국 육군 참모총장 닉 카터를 특별고문으로, 전 주중대사 세바스찬 우드를 중국사업 책임자로 영입했다. 미국 투자은행 라자드는 미 중앙정보국(CIA) 베테랑 정보요원 자미 미시크를 비롯해 미 중부사령부 사령관, 미 해군제독 등을 고용했다.

슈로더의 미주지역 최고경영자인 필 미들턴은 BBW에 "지난해 우드와 카터는 통상의 펀드매니저들이 갖지 못한 통찰력을 제공했다"며 "투자자들은 우드의 전문지식으로 중국 이해도를 높였고, 카터의 통찰력으로 중동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파급될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의 민간부문 취업을 돕는 영국 인재채용업체 'SSR퍼스넬'에 따르면 정보 관련 경력을 필요로 하는 금융부문 일자리의 수가 지난 한 해 동안 30% 증가했다.

이러한 추세는 투자자들이 직면한 위험이 금리나 인플레이션, 대출손실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수십개국에서 선거가 예정돼 있다. 지정학적 맥락을 무시해선 안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SA가 500명의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불량정치 행위자가 단 한번의 행동으로 시장의 가정을 뒤집을 가능성이 가장 큰 글로벌 리스크에 꼽혔다.

물론 정보·군 기관 출신들이 금융분야로 이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보수다.

영국 정보부의 전 고위간부는 "은행으로 옮긴 후 연봉이 3배로 올랐다"고 말했다. 런던에 본사를 둔 인재채용업체 '엔텔레스 서치'의 공동설립자 제임스 버틀러는 "안보전문가들이 금융분야 일자리를 찾는 경우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영국 해외정보국 MI6의 정보관 연봉은 3만7000파운드(약 4만7000달러)에서 시작한다. MI6 국장 리처드는 2022년 9월 기준 약 16만파운드 연봉을 받았다. CIA의 신입 사건담당관 연봉은 약 6만7000달러부터 시작한다. CIA 국장 윌리엄 번스는 약 20만달러 연봉을 받는다.

SSR퍼스넬의 CEO 피터 프렌치는 "전직 정보요원들 급여를 50만파운드까지 협상해봤다. 장기 인센티브를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며 "수많은 정보기관 출신들이 기회를 찾고 있다. 금융분야는 높은 기본급과 보너스라는 큰 매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보·군 기관 출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니다. 공공부문을 떠나면 최신정보 평가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법을 어기지 않고는 고객이 원하는 세부정보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일부 이직자들은 수익에 초점을 맞추는 금융업계의 관행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한다.

정보요원과 경찰, 군인의 민간부문 이직을 돕는 '영국 공인 보안전문가 협회'의 마이크 블루스톤은 "기업에서 성공하려면 유연한 접근방식을 가져야 한다"며 "안타깝게도 모든 이직자들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보기관 출신들이 해결해야 할 까다로운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투자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여부와 미중 긴장고조의 결과 등 각종 상황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전쟁이나 우크라이나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 등도 큰 관심사다.

정보기관 출신들의 주된 일상업무는 고객들이 향후 상황을 예측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MI6 수장으로 테러를 막고 적대국가를 교란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이나 소말리아 같은 분쟁지역을 자주 방문했던 알렉스 영거는 2년 전 골드만삭스에 합류했다. 이제 그는 분쟁지역보다 고객 및 직원과의 만남을 위해 취리히나 뉴욕에 더 자주 간다. 영거는 "고객과의 관계, 정보에 관한 일을 맡고 있다"며 "이는 나에게 매우 익숙한 세계"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금융업계가 자금세탁방지 의무 실패, 고객 주식매매와 관련한 부적절한 정보공유 등 비위로 수십억달러 벌금을 무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내부감시를 강화하는 데 정보기관 출신들이 활용되기도 한다. 영국 정보·국가안보 분야에서 26년간 경력을 쌓은 뒤 HSBC홀딩스로 옮겨 글로벌 감시를 총괄했던 앨런 로벨은 "시장을 조작하는 불량 거래자와 내부자를 찾아내 은행의 평판을 보호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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