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미국 없는 바다'에서 해양안전은

2024-01-26 11:05:47 게재
해양수산부는 22일 "민생 지키는 안전한 바다를 만들자"며 해양경찰청 광역시·도 수협중앙회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등 연안담당 27개 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해양안전 점검회의를 열었다.

강도형 해수부장관은 "올해 국정운영의 중심은 민생안정으로, 바다가 삶의 터전인 어업인과 생업 종사자들에게는 해양안전이 곧 민생안정"이라고 강조하며 참석기관에 "해양사고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들만으로 해양안전을 지킬 수 있을까? 한국은 수출입화물의 99.7%(물량기준)와 석탄 원유 철광석 등 에너지 원자재의 100%를 해상으로 운송한다. 국내 소비량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곡물도 해상을 통해 들어온다. 홍해위기로 수에즈운하와 연결된 바닷길이 불안해지자 수출입화물을 실은 선박이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게 돼 해상운임이 급등했다. 먼 바다에서 생긴 일이 국민의 삶과 경제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연안안전만으로 해양안전을 지킬 수 없는 것이다.

오는 6월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공급망기본법)이 시행된다. 공급망 위험을 예방하고, 공급망에 교란이 발생할 경우 효과적으로 대응해 국민의 경제활동과 관련된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법이다. 홍해위기가 장기화되면 공급망기본법은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까? 양안갈등이 악화돼 대만해협이 봉쇄되거나, 중국이 남중국해에 설정한 9단선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주장하면?

'자유항행'을 표방하며 세계 해상수송로를 지키던 미국이 발을 빼고 자국 문제에 집중하는 신고립주의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지정학 전략가인 피터 자이한이 자신의 책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서 예측했던 세계는 트럼프 시대를 지나 바이든 시대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진행 중인 두개의 전쟁은 '미국 없는 세계'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홍해~수에즈운하를 항해하는 게 위험하게 되자 우리 경제안보를 위협할 '미국 없는 바다'의 모습도 펼쳐진다.

예비역 해군대령 출신인 박범진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는 24일 '해운·조선·물류 안정화 포럼'에서 "해군의 기본 임무는 해상무역로를 보호하는 것"이라며 "미국 해군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급망기본법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해수부와 해군의 협력이 필수다.

하지만 미국 없는 바다가 현실이 돼도 경제안보를 지킨다는 약속은 백년하청일 수도 있다. 문재인정부에 이어 윤석열정부는 대통령실에 해양수산비서관을 두지 않았다. 신해양강국은 '대답 없는 구호'에 머물러 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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