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재건축 ‘기부채납’ 갈등에 발목

2024-02-02 00:00:00 게재

여의도시범, 어르신시설 설치 반발

수익성·이미지 훼손 vs 공공성 확보

공사비 인상으로 내홍을 겪는 서울 재건축 사업장이 기부채납 갈등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2일 서울시와 정비업계에 따르면 65층 재건축을 추진 중인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기부채납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일명 ‘노치원(노인유치원)’이라 불리는 데이케어센터(노인복지센터) 설치를 두고 벌어진 일이다. 아파트 소유주들 불만이 커지자 사업 시행자인 한국자산신탁은 서둘러 노인시설 대신 문화시설을 기부채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최근 65층 재건축을 추진 중인 여의도시범아파트가 기부채납 시설(노인데이케어센터) 설치를 두고 논란을 빚고 있다. 여의도시범아파트 전경. 사진 서울시 제공
갈등의 기본축은 아파트 단지와 서울시다. 서울시가 재건축 용적율 상향 조건으로 공공 시설 설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주민들 사이에도 내분이 있다. 최근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들 사이에선 기존의 재건축 기준인 어린이집 의무 설치를 반대하는 곳이 많다. 저출생으로 아이들이 줄어 어린이집 필요성이 줄어든데다 한번 지어 놓으면 관리에 또다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령화에 맞춰 노인복지시설을 짓는 게 낫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시범아파트 주민들 중 고령층들 사이에선 데이케어센터를 혐오, 기피시설로 분류하고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 또다른 반발이 형성되고 있다.

데이케어센터는 고령과 노인 질환, 치매 등으로 보살핌이 필요한 고령자를 지원하는 노인 복지시설이다. 지난해 서울시 인증을 받은 데이케어센터는 198곳이며 영등포구에도 10곳이 있다. 다만 여의도동에는 구립 시설 1곳뿐이다.

임대아파트 숫자도 재건축 갈등이 벌어지는 대표적 사례다. 시는 용적률을 올려주는 대신 일정 비율의 임대아파트를 요구한다. 수익성과 함께 아파트 이미지를 해친다는 이유로 임대아파트 수를 줄이려는 조합측과 공공성 확보를 위한 서울시 입장이 충돌한다.

하지만 주민들 주장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기부채납은 당초 주민들이 원하는 시설로 만드는 것이 아닌 시·구의 수요·공급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서울시는 “도로 및 공원 등을 설치할 경우 법적 의무면적 이상의 과도한 계획을 지양하고 지역에 필요한 시설을 우선 검토할 것을 권장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노인 관련 시설 설치가 향후 재건축 기부채납에서 대세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만큼 관련 수요가 급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서울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6%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최근 어르신 안심주택이란 이름으로 고령자 맞춤형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기부채납이 갈등만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반포지구에 만들어질 한강연결공원은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사업의 기부채납으로 조성된다. 총 사업비 1136억원을 들여 1만㎡ 공간에 덮개공원과 문화시설(전시장 3300㎡)을 설치한다. 지금은 올림픽대로가 가로막고 있어 나들목이나 연결된 육로로만 이동이 가능하지만 연결공원이 만들어지면 한강공원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시 도시개발 기본전략이 녹지확충으로 바뀌면서 이 같은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반포2차는 임대주택 비율을 줄이는 대신 공공청사와 서릿개공원부터 한강을 연결하는 나들목(입체보행교)을 새로 지어야 한다. 앞서 설계회사 선정 취소 등 갈등이 심했던 압구정3구역도 표면적으론 업체 간 차이가 나는 용적률이 문제였지만 기부채납에 대한 반발이 숨어 있었다는 관측이 나왔다. 시는 단지 안에 한강까지 연결되는 공용도로를 요구했다.

임창수 서울시 미래공간기획관은 “반포지구 한강연결공원을 통해 한강을 시민 삶 더 가까이 끌어들여 올 수 있게 됐다”며 “한강연결공원이 서울의 새로운 명소가 될 수 있도록 국제설계공모 등 행정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