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국경강화 예산, 미 상원서 좌초

2024-02-08 13:00:04 게재

트럼프 “반대”에 공화 지도부 합의 번복 … 토론종결 투표서 찬성 49대 반대 50

마크 존슨 미국 하원의장이 6일 워싱턴 D.C.에서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에 대한 탄핵 표결에 앞서 의사당 건물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미국 상원에서 국경 통제 강화와 우크라이나·이스라엘 지원 관련 예산을 하나로 묶은 ‘안보 패키지’ 법안 통과가 7일(현지시간) 무산됐다. 상원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초당적 법안이 공화당의 입장 번복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반대로 좌초된 것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최대 쟁점인 이민 문제를 놓고 ‘리턴 매치’가 유력한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립이 한층 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날 상원이 ‘안보 패키지’ 예산안을 정식 표결에 부치기에 앞서 토론 종결 표결을 한 결과, 찬성 49표, 반대 50표가 나왔다. 의결정족수 60표를 채우지 못해 법안 표결은 부결됐다. 대다수 공화당 의원들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일부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졌다.

앞서 민주당이 다수를 장악한 상원은 지난 4일 양당 지도부간 수개월의 협상 끝에 남부 국경 통제 강화, 이스라엘·우크라니아 지원, 대만 등 인도·태평양 동맹·우방 지원,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지원 등을 합한 총 1180억달러(약 158조원) 규모의 안보 예산안 패키지를 마련했다.

이번 패키지안에는 공화당이 요구해 온 대로 남부 국경 통제를 크게 강화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최근 한주에 1만명까지 도달한 월경자가 5000명을 넘어설 경우 대통령이 국경 폐쇄를 명령하고, 강제로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패키지 예산안의 상원 통과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동을 걸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SNS에 “이 법안은 이민과 국경에 대해 민주당이 해온 끔찍한 일에 면죄부를 주고, 공화당에게는 대신 책임을 짊어지게 하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냈고, 상황은 급변했다.

친트럼프 성향인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등 하원 공화당이 법안에 공개 반대하고,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도 법안이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고 밝히며 태도를 바꾼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런 대응은 패키지안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 바이든 대통령의 실정을 부각시킬 수 있는 호재인 ‘국경 문제’가 흐릿해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 수뇌부가 이 패키지안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가운데, 상원에서도 표결을 통과하지 못함에 따라 이번 안보 패키지안은 사실상 좌초됐다.

상원 다수당인 민주당 척 슈머 원내 대표는 하원 공화당 수뇌부가 대놓고 반대하는 국경 통제 관련 내용을 제외한 채 우크라이나·이스라엘 지원을 포함한 순수 대외 안보 지원 예산안만 추려서 처리하는 ‘플랜B’를 추진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는 24일로 러시아의 침공에 따른 개전 2주년을 맞이하는 우크라이나는 미국 의회의 안보 예산안 처리가 지연됨에 따라 더욱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 참석한 뒤 공화당을 향해 “도널드 트럼프가 전화를 걸어 협박하고 있어 그들은 걸어 나가버렸다”며 합의안 폐기를 비판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사태를 두고 “의회가 11월 대선 전까지 이민이나 국경 관련 어떤 법안도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면서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대만 등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군사 지원도 가로막혔다고 지적했다.

한편, 하루 전 하원 본회의에서는 공화당이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을 미국- 멕시코 국경 관리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지난달 28일 발의한 탄핵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과반 획득에 실패하면서 내부 분열상이 노출됐다. 켄 벅 등 공화당 의원 4명의 이탈 때문이다. 이들은 마요르카스 장관을 탄핵할 만한 범죄 행위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로 암 치료 중인 스티브 스컬리스 의원은 불참했다.

민주당에선 212명 전원이 반대표를 던지면서 결국 찬성 214, 반대 216표 부결됐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김상범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