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0명 선발, 지역에서 9년 의무근무

2024-02-19 13:00:03 게재

일본 니가타대 의대 지역인재전형 … 지자체, 도쿄의 사립의대와도 지역선발 협약 맺어

윤석열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리고, 해당 지역출신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인재전형을 60%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의료개혁이 최대 현안으로 부상했다. 이와 관련 일본이 오래전부터 시행한 ‘의대 지역인재전형’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졸업후 일정 기간 지역내 근무로 제한하는 제도다.

일본 국립 니가타대학 2024년 신입생 모집요강에 따르면 의학부는 선발인원 140명 가운데 40명을 지역인재로 선발한다. 40명 가운데 22명은 니가타현 내 고등학교 졸업자, 나머지 18명은 니가타현을 포함한 전국 각지의 고교 졸업자로 채워진다.

니가타현, 일본내 의료인프라 가장 열악

우리나라 동해에 접한 일본 니가타현은 지난해 10월 기준 총인구(약 212만명) 중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은 34.0%로 전국 평균(29.1%)에 비해 5%p 가량 높다. 지역 의료시설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2020년 기준 4500명 안팎으로 인구 10만명당 의사수는 203명이다. 전국 평균(269명)에 크게 못미친다. 일반 병·의원수는 물론, 고령자가 많이 찾는 내과 및 외과계열 의료시설은 전국 평균의 70~80% 수준에 그친다. 일부 도시지역을 뺀 대부분이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촌과 산간지역으로, 의료서비스 접근성도 열악하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2020년 발표한 지역별 의사충족도를 보여주는 ‘의사편재지표’에 따르면 니가타현은 4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최하위로 나타났다. 이 지표는 지역내 △총인구 및 인구구성 △인구구성의 변화 추이 △환자의 유·출입 △지리적 조건 △의사의 성별·연령별 분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지표로 의료서비스의 양적·질적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다.

의료시설 및 의사수의 절대적 부족에 직면한 지자체와 지역 거점대학은 중앙정부와 협의를 통해 니가타현 출신의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국립 니가타대학은 지난해부터 의학부 신입생 정원을 전국 최대규모인 140명으로 증원하고, 특히 지역내 의료시설 종사를 의무화하는 지역인재전형을 국공립대학 가운데 가장 많은 40명으로 늘렸다. 지자체는 이렇게 선발한 지역인재를 양질의 의사로 육성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해 3억엔(약 27억원) 규모의 기금을 창설했다.

니가타대학 올해 신입생 모집요강에 따르면, 의학부 지역인재 40명은 전원 고교학교장추천제로 뽑는다. 지원자격은 △올해 졸업예정자 및 5년내 고교 졸업자 △학교장이 우수학생으로 추천한 자 △고교전학년 성적 최상위인 A급 이상 △전국 공통테스트(수능) 국어 수학1 수학2 과학 사회 등 5개 교과 7개 과목 수험자 △의사 면허취득 후 니가타대학 또는 지역내 연수병원에서 연수할 자 △연수를 포함해 지역 의료기관에서 9년간 종사를 확약한 자 등으로 제한하고 이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니가타대는 이러한 지원자격을 전제로 5단계에 걸친 면접을 통해 합격여부를 결정한다. 지역인재전형은 가장 우수한 인재가 지원하는 의과대 시험에서 사실상 성적 중심의 일반전형과 달리 ‘인성’과 ‘지역내 헌신의지’ 등 정성적인 평가가 반영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역출신 지원자에 유리하다. 츠츠이 후미 의학박사는 언론 기고에서 “시험성적은 국공립대 의학부 일반전형에 비해 낮을 수 있지만, 지역 의료에 대한 의욕을 자기소개서와 소논문, 면접 등에서 철저히 검증한다”며 “해당 지역외 고교 출신자도 응시가 가능하지만 면접 과정에서 지역 출신자에 비해 불리하다”고 말했다.

지자체는 이렇게 선발한 지역인재 학생을 대상으로 매달 15만엔(약 135만원)씩 재학 6년간 최대 1080만엔(약 9700만원)을 학비와 생활자금 등의 명목으로 지원한다. 국립대이기 때문에 적은 학비와 장학금 수혜, 기숙사 생활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무상교육에 가깝다는 평가다.

의대생, 다섯명 중 한명 지역서 의무 근무

일본정부는 지방 의료인력 부족 해소대책으로 국공립대학을 중심으로 지역인재 선발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지역인재는 2007년 전국적으로 173명 수준에서 2008년부터 단계적으로 정원을 늘려 2020년 기준 전국 의대 정원 9330명 중 1680명(18.0%)으로 급증했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해 말 조사한 결과 지방국립대 가운데 의학부가 있는 42개 대학 중 37개 대학이 이 전형을 시행하거나 계획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지역선발과 별도로 지역내 근무를 의무로 선발하는 ‘자치의대’(120여명)를 포함하면 이미 20%를 넘었을 것이라는 추산이다.

니가타대 의학부 경우도 최근 3년간 지역선발전형 정원을 2021년(27명)이후 2022년(33명), 2023년(40명)까지 꾸준히 늘리고 있다. 일본 지역인재전형의 특징은 광역지자체가 해당지역의 대학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니가타현의 경우에도 니가타대학(40명)을 비롯해, 도쿄에 있는 도호대학(8명)과 쇼와대학(7명) 등 사립대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12개 대학과 협약을 맺어 총 77명을 모집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사립 의대 지역인재에 대해서는 6년간 최대 3660만엔(약 3억3000만원)까지 학자금 등을 지급하면서 인재 유치와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역인재전형은 해당지역 출신자가 중심이지만 반드시 그 지역 출신만 뽑는 것은 아니다. 광역단체와 대학에 따라 세부 운용방식은 일부 다르지만 대체로 △학교장추천제에 따른 선발 △지자체의 학비 및 생활비 지원 △의사면허 취득 후 해당지역 의료시설 의무종사 △이를 지키지 않으면 금전적 혜택에 대한 원금과 이자의 즉시 반환 △해당지역 이탈후 도쿄 등 대도시 대형병원으로 이동시 의사 및 병원 모두에 대한 불이익 등이 특징이면서 공통점이다.

일본정부가 이처럼 지역선발을 권장하고 보호하는 데는 그만큼 지역의료시설 의사인력 부족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후생노동성이 2022년 발표한 ‘2020년 의사 통계현황’에 따르면 2020년 12월 말 기준 의사는 전국적으로 33만9630명으로 전년(32만7210명) 대비 3.8% 증가했다. 인구 10만명당 의사수는 269.2명으로 전년(258.8명)대비 소폭 증가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50명에 크게 밑돈다.

일본 국립대학 의과대 학장회의 소속 ‘지역의료 및 의료인 육성에 관한 위원회’ 위원장인 소메야 토시유키 니가타대 의대학장은 유튜브 홍보영상에서 “의사로서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싶은 의지를 가진 젊은 학생들이 이 제도를 활용해 꿈을 이룰 수 있다”면서 “젊은 인재들이 수준 높은 교육과 수련을 통해 양질의 의사로 성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일본에서는 최근 의학계열뿐만 아니라 지방소재 초중등학교 교육현장에서 교사인력이 부족해지면서 교육대학에서도 비슷한 지역인재전형이 확산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조사에 따르면 교육관련 학부가 있는 전국 45개 국립대학 가운데 18개 대학에 지역인재전형이 있어 의학계열과 비슷한 지원과 의무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지역의료 버팀목 성과 … 이탈자 증가 문제

지역의료 인프라의 핵심인 의사인력 충원에서 지역선발이 갖는 중요성과 성과는 크다. 히로시마대학에서 지역의료체계를 연구하는 마쓰모토 미사토시 교수팀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국공립대 등 지역인재전형과 ‘자치의대’ 출신 의사 2454명을 분석한 결과 의사면허 취득 1년후 지역내 의무복무 이행률은 자치의대(97.5%)와 지역인재전형(89.9%)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연구팀은 “지역의사를 배출하기 위한 일본의 의학교육 정책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만 교육과정에 투입되는 비용과 의무의 강도에 따라 효과는 차이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인재전형제도의 선발과 관리 및 운영에 일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후생노동성 2020년 조사에 따르면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된 누적 인원은 9700여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450명(약 4.6%)이 해당지역을 이탈해 외부로 나갔거나 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 사유는 대체로 결혼과 출산 등 개인적 사정과 함께 대도시 대형병원에 비해 설비와 시설이 열악하고, 이에 따라 자신의 전문성을 키우기 어렵다는 이유가 많았다.

이 제도가 △장기간 거주이전과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 △해당 지역 의료기관 이탈시 전문의 면허 취득 불가 △이탈한 의사가 취업한 병원에 대한 보조금 감액 등 여러 제재가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군마대학 의학부 5학년 아리마 히로키씨는 지지통신과 인터뷰에서 “입학 후 의무 종사에서 어쩔수 없이 이탈해야 하는 경우 받은 장학금에다 높은 이자까지 더해 토해내는 것은 문제”라며 “대학 입학 전 자신의 장래를 모두 설계하기 전에 맺은 강제적 협약 때문에 15년(학부 6년 +의무근무 9년)이라는 긴 기간 자유를 제한하는 페널티 중심의 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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