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HMM 매각무산 이후의 과제

2024-02-19 13:00:18 게재

국내 최대선사 HMM 매각협상은 당사자들에게 후유증만 남긴 채 무산됐다. 우선협상 대상자였던 하림이나 매각측인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 해당기업 HMM 모두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하림은 ‘고래(HMM)’를 삼키려고 무리수를 썼던 ‘새우’로 전락했고, 산은과 해진공은 매각능력 부족을 의심받고 있으며, HMM은 민영화 지연의 후과를 감당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처럼 큰 거래는 한번 무산되면 상당기간 재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현장 분위기다. 해운산업 발전을 위한 HMM 민영화 시간이 지연되고 있는 셈이다.

매각 전제조건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진행

이번 HMM 매각과정은 매각조건만 7주 넘게 이야기하다 끝난 셈이 됐다. 큰 쟁점은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한 영구채 전환 유예와 배당액 제한, 5년간 지분매각 금지, 매각측의 사외이사 지명권 등이다. 협상 막바지에는 하림과 인수컨소시엄을 맺고 있는 JKL파트너스 지분매각 예외적용으로 좁혀졌다. 또 매각측이 매각 이후 경영을 감시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해 하림측이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협상이 성사돼 산은과 해진공 영구채가 2025년까지 전량 주식으로 전환되면 매각측 지분은 32.8%가 되고 하림 지분은 57.9%에서 38.9%로 낮아진다. 하림과 매각측 지분율 차이가 6.1%p에 불과하게 된다.

하림그룹은 협상결렬 직후 낸 입장문에서 “실질적인 경영권을 담보해주지 않고 최대 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어떤 민간기업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매각측이 매각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경영을 감시하려고 하는 태도를 비판한 것이다. 매각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전제조건을 분명히 하지 않고 협상을 진행한 데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초기 독일 해운사 하팍로이드 예비입찰 참여건도 매각조건 준비소홀의 방증이다.

매각측이 매각 이후에도 경영을 감시하는 것은 2대주주로서의 역할로 볼 수도 있다. 해운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인 만큼 글로벌 8위 선사인 HMM 경영 감시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같은 입장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높다. 장기적 투자와 안목이 필요하고 다른 선사와 신뢰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해운산업 특성상 공공기관 간여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영화하는 배경과도 어긋난다.

현재 해운산업은 새로운 변곡점에 섰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새로운 시기에 맞춰 한국 해운사들이 대응을 하지 못하면 20년 전 실수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다. 20년 전 글로벌 해운 이슈는 선대 대형화였다. 선대 대형화를 통해 원가를 낮춰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었다. 한국 선사들은 이를 실현하지 못했다. 당시 외국 선사들은 국가 지원을 받아 재무적으로 기반을 갖추었다.

지금은 해운사들이 공급과잉에 따른 시스템 변화와 환경규제 대응력을 갖추는 것이 과제다. 이전까지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으로 원료와 중간재를 옮기고 이어 중국에서 완제품을 싣고 세계 각 지역으로 실어나르는 구조였다. 이제는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 블록화 경향을 보이면서 특정국가에 화물이 집중되지 않고 흩어지고 있다. 인도나 동남아가 중국을 대체하면서 운송비용이 늘었다. 선복량이 과잉인 상태에서 효율적인 운송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이와 함께 해운산업은 친환경 생태계를 갖추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운항선박 탄소배출 감축뿐 아니라 운송과정 전체에 친환경 솔루션을 적용해야 한다. 화물 선정부터 최종 배달까지 포함해서다. 업계는 이를 갖추지 않은 선사는 결국 도태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기술문제로 이런 상황이 5년 뒤에 올지 10년 뒤에 올지 알 수 없다. 장기호흡으로 이를 준비해야 하는 과제이자 민영화 이유이기도 하다.

시스템 변화와 환경규제 직면한 해운업계

최종 협상이 결렬된 직후 산업은행측은 “일정을 밝히기 어렵지만 재매각에 시간에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해운산업의 호황이 끝나고 조정기에 접어든 점도 재매각 시기를 늦추는 요인이다.

이번 매각무산을 교훈 삼아 산은과 해진공은 사전에 매각조건을 분명히 하고 진행해야 한다. 협상과정에서 외부 입감을 배제하고 기업 경쟁력 제고라는 관점을 지향하길 바란다. 나아가 친환경선박 전환을 유도하는 보조금이나 세제혜택을 확대하는 등 머리를 맞대야 한다.

범현주 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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