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57년 점령’ 적법성 따진다

2024-02-20 13:00:02 게재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 재판 개시 … 팔레스타인 “불법점령 중단 명령 촉구”

리야드 알말리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과 리야드 만수르 팔레스타인 유엔 특사가 19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의 법적 결과에 대한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ICJ)가 개최한 공청회에 참석해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역 점령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적법성을 따지기 시작했다.

로이터통신, AFP 등 외신들은 일제히 19일(현지시간)부터 ICJ가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온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역 점령의 적법성을 판단하는 재판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리야드 알말리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외무장관은 이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첫 심리에서 “현재 가자지구에서 자행되는 제노사이드(집단학살)는 수십년간 이스라엘에 대한 처벌 면책과 무대응의 결과물”이라며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을 즉각적이고 조건 없이 완전히 종식하는 것이 국제법에 부합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그는 “법원 판결이 (점령을) 종식시키고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길을 닦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팔레스타인인이나 이스라엘인이 죽지 않는 미래, 두 국가가 평화와 안보 속에 나란히 사는 미래”를 강조했다.

팔레스타인 측 변호인단도 재판부에 “양측 국민에게 매우 필수적인 ‘두 국가 해법’을 위한 최선이자 마지막 희망은 ICJ가 이 해법의 중대 장애물인 이스라엘의 점령을 불법이라고 판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재판은 2022년 12월 유엔이 ICJ 자문을 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킨 데 따른 후속 조처다. 당시 유엔 총회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합병하고 이곳에 정착하는 게 합당한지와 관련해 ICJ에 자문했다”며 “ICJ의 판단을 구하려는 사항에는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의 인구 구성 및 지위를 바꾸고 이와 관련된 차별적 조치를 도입한 것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15명의 국제 재판관은 이날 팔레스타인을 시작으로 26일까지 50개가 넘는 재판 참여국의 의견을 청취하며 재판부 최종 판결은 약 6개월 뒤 나올 것으로 보인다. ICJ는 세계최고 권위의 재판소이지만 이번 재판 성격이 유엔 총회 요청에 따른 법률 자문이어서 판결이 나더라도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심리에 불참할 예정이어서 판결을 무시할 가능성도 있다.

이스라엘은 재판에 참석하지 않는 대신 5페이지 분량의 서면 성명을 통해 “유엔 총회가 제기한 질문이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ICJ 권고적 의견이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에 해로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이스라엘은 지난해 7월에도 일찌감치 제출한 서면 의견서에서 유엔의 자문을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 총회가 ICJ에 팔레스타인 점령 영토와 관련해 권고적 의견을 요청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04년 7월 법원은 동예루살렘과 서안 지구에 있는 이스라엘의 분리장벽이 국제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철거해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무시했고 장벽은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 중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대량 학살에 대한 정치적 압박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가자지구 보건 관리들은 이스라엘이 과거에도 법적 의견을 무시했지만 이번 재판으로 약 2만9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한 가자 전쟁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중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 가자지구를 점령했고, 이후 서안과 동예루살렘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성지가 있는 동예루살렘을 서예루살렘에 병합해 수도로 삼았다.

뉴욕타임스는 19일자 보도에서 모든 이스라엘 정부가 정착촌에 일부 건축을 허용했지만 현재의 네타냐후 정부는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수천 채의 신규 주택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다면서 이를 통해 1967년 이후 40만명 이상의 이스라엘인이 서안 지구에 정착했다고 전했다.

한편 유엔은 1967년부터 이 지역을 이스라엘이 점령한 것으로 언급하며 이스라엘군 철수를 요구해 왔지만 1967년 결의안은 점령을 불법으로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정재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