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 두 은행, 고객·명칭 놓고 갈등

수익성 높은 자산관리사업서 치열한 경쟁 … 블룸버그 “한세대 내 합병 가능성”

2024-02-21 13:00:00 게재

지난 200여년 동안 국제금융계를 막후에서 좌지우지했고, 현재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알려진 로스차일드 가문. 1800년대 초 독일 마이어 암셸 로트실트(로스차일드의 독일식 발음)는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게토에서 출발해 19세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금융제국을 일궜다.

로트실트는 다섯 아들 중 맏아들만 집에 남기고 나머지 네명을 런던과 파리 나폴리 비엔나로 보내 은행을 설립케 했다. 이후 200년 동안 이 대가족은 유럽의 제국과 각종 전쟁에 자금을 댔고 유럽의 경제와 정치, 역사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현재 로스차일드라는 유서 깊은 이름을 내건 은행은 단 2곳이다.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둔 ‘로스차일드 앤 코(Rothschild & Co)’와 스위스 프라이빗뱅크인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Edmond de Rothschild)’다.

2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로트실트가 아들들을 보낸 런던과 파리지점은 이 가문의 성공사례였다. 파리지점은 프랑스혁명 후 국가재건에 자금을 지원했다. 2차세계대전 후에는 산업부흥에 돈을 댔다. 프랑스 전 대통령 조르주 퐁피두와 현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모두 로스차일드 파리지점을 거쳐간 인물들이다. 영국의 N M 로스차일드 & 선즈는 워털루전투에 자금을 대 웰링턴 공작이 나폴레옹을 물리치는 데 일조했다. 런던과 파리지점은 2003년 현재의 로스차일드 앤 코로 합병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스위스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는 비교적 신생기업이다. 로스차일드의 프랑스 가문에서 태어난 5대 창립자 에드몽이 1953년 설립했다. 이 은행은 스위스의 금융규제가 약하고 불투명하다는 점을 활용해 전후 전세계 고액자산가들의 탈세를 도우며 성장했다.

로스차일드 은행들은 서로 다른 부문에서 강점을 지녔다.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는 스위스와 룩셈부르크 모나코 등지에서 프라이빗뱅킹(거액 자산가를 상대로 한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을 전문으로 한다. 반면 로스차일드 앤 코는 기업 인수합병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80년대 프랑스 사회주의 성향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이 로스차일드 앤 코를 국유화하자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가 파리의 사촌들이 재기하도록 재정적으로 돕기도 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서로 다른 영역에서 사업을 운영해 온 이들 은행이 이제는 수익성 높은 250조달러 규모 글로벌 자산관리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유럽과 중동, 아시아 전역의 부유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경쟁에서 로스차일드라는 브랜드는 핵심무기다.

취리히응용과학대에서 자산관리를 가르치는 크리스토프 퀸즐레는 “두 회사는 이제 비슷한 고객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며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의 경쟁력은 매우 강력하다. 수세기 역사를 가진 이름은 두 기업 모두 활용하려고 하는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로스차일드 앤 코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다. 그럼에도 1000억달러가 넘는 자산을 관리한다.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의 주요 지점이 있는 곳에 경쟁지점을 열면서 빠르게 입지를 다지고 있다. 2023년 상반기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자산관리부문 세전이익이 자문부문 이익을 넘어섰다.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를 바짝 뒤쫓고 있다.

로스차일드 이름 내건 ‘유이’한 두 은행

1997년 에드몽이 사망하자 당시 34세였던 외아들 벵자멩이 회사를 이어받았다. 요트나 사냥 스키 등 취미활동에 더욱 열심이었던 벵자멩은 2009년 아내 아리안을 부의장으로 승진시켰다. 2021년 벵자멩은 57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대개의 왕조와 마찬가지로 로스차일드 가문도 가족 간 음모와 적대감이 있었다. 스위스와 프랑스 사촌 간 관계는 어색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에 정통한 한 인사는 블룸버그에 “에드몽이 프라이빗뱅킹이라는 다른 길로 접어들면서 한때 가장 부유한 가족 일원이 됐다. 이것이 질투의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사업에 대한 벵자멩의 무관심은 프랑스 사촌들에게 아쉬운 점이었다. 같은 가족 내에서도 관계가 삐걱거렸다. 벵자멩의 어머니 나디네는 아들과 며느리가 남편이 일군 은행을 운영하는 방식에 불만을 품고 수년 전 재산 일부를 스위스 경쟁사인 픽테은행으로 옮겼다.

두 회사의 갈등은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으로도 이어졌다. 2015년 CEO로 취임한 에드몽의 아내 아리안은 ‘로스차일드’라는 이름만 단독으로 사용하고 있는 로스차일드 앤 코에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2018년 양측은 가문명의 단독 사용을 금지하는 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로스차일드 앤 코는 ‘로스차일드닷컴’으로된 웹사이트 이름을 포기했다. 프랑스와 벨기에, 모나코에서의 프라이빗뱅킹사업은 ‘로스차일드 마텡 마우렐’로 바꿨다. 다만 프랑스 투자은행은 로스차일드 앤 코로 계속 부르기로 했다.

프랑스 로스차일드 앤 코는 7대 후손 알렉상드르(43세)가 이끌고 있다. 이 회사의 총 관리자산은 2023년 중반 기준 1020억유로(1100억달러)다. 2015년 대비 2배 늘었다. 알렉상드르는 2022년 “7~12년 안에 관리자산을 2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알렉상드르는 2008년 입사해 승진을 거듭하다 2018년 아버지 다비드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았다. 지난해 그는 로스차일드 앤 코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업계 전반의 침체로 가장 큰 사업인 기업 M&A 거래가 급감하면서다. 대신 그는 자산관리 부문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2년 로스차일드 앤 코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 자산관리사무소를 개설해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의 유서 깊은 터전에 둥지를 틀었다.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는 이스라엘과 강력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십년 전부터 이스라엘의 부유한 고객들을 대거 유치했다.

알렉상드르는 또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영국 등에도 전문인력을 보강했다. 이들 지역은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가 강력한 발판을 마련한 곳이다. 두 은행 모두 중동지역 확장에 주력하고 있기도 하다.

영국 브랜드 컨설팅업체 ‘브랜드 파이낸스’의 이사 데클란 아헤른은 “고객들 중 이 두 기업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며 “사업이 성장함에 따라 서로의 영역으로 진출해 더 큰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법적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스차일드 앤 코가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의 영역에 공격적으로 뛰어든 건 아리안이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승계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렸다. 게다가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는 지난 5년 동안 3명의 CEO가 바뀌고 성장이 정체되는 등 내부적으로도 격변을 겪었다. 관리 자산은 2021년 1780억스위스프랑(약 2020억달러)에서 2022년 1580억스위스프랑으로 감소했다.

2019년 CEO에서 물러난 아리안은 지난해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2026년까지 3500억스위스프랑을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버겁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우세하다. 하지만 아리안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영업이익이 두자릿수 성장했고 순신규자산이 110억스위스프랑을 기록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갈등·경쟁 이어지지만 화합 관측도

두 회사의 경쟁과 갈등이 이어지지만, 가문의 화합을 중시한 선대의 유지에 따라 언젠가 합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이 문제에 정통한 사람들은 향후 1세대 안에 로스차일드 제국을 강력하게 유지하기 위해 두 기업의 결합이 필수적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가족기업을 전공으로 하는 HEC파리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필립 펠레-클라무르는 “두 회사의 자존심을 내건 갈등의 기간은 2세기에 걸친 역사에 비하면 비교적 짧은 기간”이라며 “다음 세대에선 화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합병을 가상한 로스차일드 은행은 거대 투자은행과 자산운용사에 비하면 여전히 작은 규모지만, 암스테르담과 로스앤젤레스 도쿄에 이르는 지점에 약 7000명의 직원을 둔 기업이 된다. 2022년 말 두 회사의 관리자산은 약 2800억달러로, 프라이빗뱅킹 강자인 롬바르 오디에와 J. 사프라 사라신 은행은 물론 본토벨 홀딩도 앞서게 된다.

과거 로스차일드 앤 코에서 합병을 제안했지만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에서 거절한 바 있다. 로스차일드 앤 코 회장 알렉상드르와 부친 다비드는 여전히 합병을 원하는 입장으로 아리안 측에 계속 제안했지만 소용이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적어도 당분간은 세계 부유층을 차지하기 위해 양측 모두 가문의 이름을 걸고 싸우게 될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선견지명을 드러내듯, 고 벵자멩 드 로스차일드는 2010년 인터뷰에서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이 없다면 우리 기업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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