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직 증권맨 “살아서 다시 최고치 볼 줄 몰랐다”

2024-02-23 13:00:01 게재

도쿄증시 3만9천 돌파…34년 만에 역대 최고치 경신

닛케이신문 호외 발행 “더이상 ‘버블붕괴 이후’ 아니다”

일본 도쿄증시 닛케이평균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금융시장은 물론 정부와 언론도 환호했다.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이후 오랜 침체에서 벗어났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일본 내부에서도 이러한 증시 호황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도 나온다.

◆기시다 총리 “일본경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도쿄증시를 대표하는 주가지수인 닛케이평균지수는 22일, 전날(3만8262.16) 보다 2.2%(836.52) 오른 3만9098.68로 장을 마감했다. 이날 종가는 1989년 12월 29일(3만8915.87) 기록한 전고점을 무려 34년 2개월 만에 경신한 역대 최고치이다.

이날 도쿄증시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시가총액 상위종목도 일제히 상승했다. 시가총액 1위인 도요타자동차는 주당 3521엔으로 전날보다 2.68%(92엔) 상승했다. 시가총액 2위와 3위인 미쓰비시UFJ금융그룹과 도쿄일렉트론도 전날 종가 대비 각각 0.98%(14.5엔), 5.97%(2060엔) 올랐다.

닛케이지수가 22일 장마감 시간인 오후 3시를 앞두고 3만9000선을 안정적으로 웃돌면서 종가 기준 역대 최고치 돌파가 현실화되자 금융시장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히라노 켄이치 전 타치바나시증권 이사(77)는 “설마 살아있는 동안 최고치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다음 목표는 없지만 어디까지 오를지 궁금하다”며 흥분했다.

일본 정치권도 거들고 나섰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일본 경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국내외 시장관계자가 평가해주고 있다”면서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고, 힘이 강해진 것을 느낀다”고 기자단에 밝혔다.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기시다 정권은 고물가를 넘어서는 임금인상 실현과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투자와 소비로 연결하는 선순환을 실현하고, 기업의 성장과 국민의 자산소득 증가로 이어나가고 싶다”고 했다.

일본 언론은 22일 오후부터 대서특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오후 주식시장 마감직후 호외를 발행하고 “도쿄 주식시장에서 닛케이평균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23일 1면 머릿기사를 비롯해 여러 지면에 걸쳐 주식시장 시황을 전하면서 다양한 분석기사를 내놨다. 신문은 특히 1956년 일본 정부 경제백서의 유명한 한 문장을 빌려와 “더이상 ‘버블경제붕괴 이후’가 아니다”라면서 30년 이상 지속된 일본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낫다고 평가했다.

도쿄증시 닛케이지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22일 오후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호외를 발행했다. 출처 니혼게이자이신문 전자판

일본 정부는 1950년대 초반 한국전쟁 특수 등에 힘입어 패전이후 최악의 경제상황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에서 “더이상 전후가 아니다”라는 표현을 써 경제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했다. 실제로 일본 경제는 1950년대 중반이후 60~70년대를 거치면서 고도경제성장을 누려 한 때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특히 1980년 중반이후 버블경제기에는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폭등했다.하지만 1990년대 이후 버블이 붕괴하면서 기나긴 침체에 빠져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오명을 들었다. 이날 주가 최고치는 일본경제가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져 금융시장을 비롯해 정치권과 언론이 환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닛케이지수, 올해 들어 17% 수직 상승 = 도쿄증시 닛케이지수는 22일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말 대비 16.8%(+5634.51) 상승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일본 증시 대해부, 데이터로 읽는 역사적인 고주가 배경’이라는 분석을 통해 주가상승의 원인을 7가지로 짚었다.

우선 세계 금융시장 환경이 일본 증시에 파급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연준(Fed)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모이는 가운데, 그동안 저평가 받았던 일본이 투자자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과 유럽, 인도 등의 주식시장으로 투자자금이 몰리는 가운데 일본기업의 경쟁력이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경영실적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점도 주가 강세의 원인이다. 예컨대 일본 기업은 주당순이익(EPS)이 2012년 말에 비해 2.7배 증가해 미국(2.1배)과 유럽(1.5배) 기업에 비해 오름세가 가팔랐다. 이에 따라 기업가치를 재는 지표의 하나인 주가수익비율(PER)은 14배 전후에 그쳐 미국(20배) 등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았다.

기업의 주주가치 환원을 위한 노력도 결실을 맺고 있다. 닛세이기초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상장기업의 배당금 총액은 2023년 기준 2014년에 비해 2.5배 늘어난 18조5000억엔(약 163조원)에 달했다. 자사주 매입도 같은 기간 2.7배 증가한 9조3000억엔(약 82조원)에 달했다. 이데 마오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본 기업은 풍부한 현금 유보를 배경으로 앞으로도 배당과 자사주 매입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도 10년이 지나면서 부각되고 있다. 아베 정권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노력으로 자기자본이익률(ROE)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내 주요 1000개 기업의 ROE는 2012년 기준 평균 4%대에서 올해는 9.3% 수준까지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상장기업의 절반 가까이가 ROE1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기업가치가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밖에도 △디플레이션 탈출 조짐 △일본내 가계자산의 주식시장 유입 흐름 △도요타자동차 등 대형주의 주가 상승 등을 꼽았다.

도쿄증시는 당분간 오름세를 지속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히로키 타카시 마넥스증권 수석애널리스트는 “양호한 기업실적에 더해 기업이 주가를 의식한 경영을 지속할 경우 추가적인 상승이 예상된다”며 “닛케이지수는 머지않아 4만포인트에 도달 할 것”이라고 했다. SMBC닛쿄증권은 “올해 7~9월쯤 닛케이지수는 4만2000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본증시 상승이 실물경제에 기반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할지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23일 “실물경제와 급등하는 주가와는 격차가 있다”며 “지난해 일본의 명목GDP는 독일에도 뒤져 세계 4위로 전락했고, 잠재성장률도 0.5%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본의 지난해 4분기 실질GDP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흐름을 보였고, 고물가 등에 따른 소비침체도 지속되고 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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