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세계무역 재편 꾀해…성공할까

2024-02-27 13:00:22 게재

FT “위축된 WTO 보완할 대안적 FTA체제 구축” … 미·유럽시장 대체는 어려워

미국 등 서방과의 무역 마찰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흔들리면서 중국이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한 대안적 무역구조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6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의 주요 전략은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140여개국이 참여하는 1조달러 규모의 투자프로그램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기반으로 ‘글로벌 사우스’와의 관계를 활용하는 것이다.

중국은 특히 양자 및 지역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대안 무역구조를 구축중이다. 중국이 FTA를 맺고 있는 나라 또는 지역은 28개에 달한다. 한국이나 일본 베트남 등이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 역내 국가는 포함되지 않는다.

FT에 따르면 2022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1년 동안 이같은 FTA 네트워크를 통한 수출액은 1조3000억달러에 달한다. 중국 총수출액 3조4300억달러의 38%다. FT는 “이 기간 중국은 세계 4위와 5위 수출국 네덜란드와 일본이 전세계에 수출한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을 FTA 네트워크를 통해 수출했다”고 전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인 2018년 이후 WTO 체제는 위축되고 있다. UN무역개발협의회에 따르면 관세와 비관세 조치를 포함한 ‘무역 제한조치’가 크게 증가하면서 지난해 세계무역 가치가 5% 감소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2019년 이후 WTO 분쟁해결제도인 상소기구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수십억달러 규모의 무역분쟁들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졌다. 결과적으로 무역에 따르는 비용이 커지는 등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중국은 이같은 상황을 고려해 대안적 무역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싱가포르경영대 법학교수이자 WTO 고문인 헨리 가오는 “중국은 자국이익을 위한 대체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며 “이 대안은 주로 일대일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중국은 점진적으로 미국과 EU 같은 전통시장에서 일대일로 기반 시장으로 수출을 전환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 WTO 체제 불안감에 대응

양자 및 지역 FTA 체결은 중국 시진핑 주석의 최우선 과제다. 시 주석은 지난해 9월 연설에서 “중국은 보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발전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중국은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 지역네트워크를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FTA 생태계 구축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경제 안정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탄력을 받았다. 2008년 말 중국-싱가포르 FTA에 이어 2010년 아세안 10개 국가와 FTA를 체결했다. 특히 미국이 2016년 다자간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협상에서 자국을 배제하자, 중국은 본격적으로 FTA 프로그램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가장 큰 성공작으로 평가 받는 것은 2022년 발효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다. RCEP 15개 회원국은 전세계 GDP의 약 1/3을 차지한다. 중국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FT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다른 나라 또는 지역협의체 등과 10개에 달하는 추가 FTA를 협상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이스라엘 파나마 등이다. 타결될 경우 중국의 FTA 네트워크 수출비중이 약 4.3%p 더 늘어날 전망이다. 거기에다 타당성 검토에 들어간 FTA가 8개나 더 있다. 캐나다와 방글라데시 콜롬비아 등이다. 이것까지 타결된다면 FTA 수출비중이 약 2.6%p 더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장기적으로 일대일로에 포함된 140여개국과의 관계를 활용해 가능한 한 많은 나라와 FTA를 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한다. 싱가포르경영대 가오 교수는 “이러한 추세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2022년 11월~2023년 10월 일대일로에 포함된 아세안 10개 회원국에 대한 중국 수출이 대미 수출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넓게 보면, 중국의 일대일로 국가와의 무역은 미국과 EU 일본과의 무역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았다.

영국·남아공계 자산운용사 ‘나인티원’의 신흥시장 전문가인 마이클 파워는 중국과 개발도상국의 상업적 교류를 전세계 많은 국가들이 중국의 축으로 기울고 있다는 증거로 본다. 그는 “중국은 대안적인 세계질서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고 실제 성공하고 있다”며 “서구의 많은 사람들은 중국이 서구를 제외한 나머지 세계에서 얼마나 성공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서방이 중국과의 탈동조화를 시작하면서 나머지 세계는 중국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진행중인 그같은 변화의 한 가지 측면은 중국의 FTA 지형에 따른 투자흐름 급증에 있다. 마이클 파워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 90억달러였던 중국의 대아세안 직접투자가 2022년 154억달러로 증가하면서 이 지역의 경제적 운명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페낭의 반도체,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의 전기차 및 전기차 배터리 같은 첨단기술 제조기지들은 아세안 국가들이 기술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의 FTA 추진은 지정학적 필요성에 따른 것이다. 중국은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아랍국가들 연합체인 걸프협력회의(GCC)와 FTA를 추진중이다. 이 FTA는 이미 10차례 협상을 거쳤다. 중국은 2022년 “최종적이고 중요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GCC는 중국의 중요한 전략적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중국은 2022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12개월 동안 이 지역에 1125억달러를 수출했다. 그리고 석유 수요의 약 40%를 이 지역에서 수입했다. 미국 제재를 받는 화웨이 등 중국 기술기업들은 GCC 여러 회원국에 국가 중추 인프라를 설치하고 있다.

중국이 눈여겨보는 또 다른 지역은 아프리카다. 2018년 아프리카 54개국이 서명한 아프리카대륙 자유무역협정(AfCFTA) 출범은 중국에게 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AfCFTA 사무국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AfCFTA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2021년 디지털무역, 통관절차, 지적재산권 등 문제를 협력하기 위해 AfCFTA에 전문가그룹을 설립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중국정부의 한 관계자는 “AfCFTA의 운영이 중국의 표준과 절차에 부합할 수 있다면 아프리카와 중국 모두에게 윈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 대미 대유럽 우회로도 모색

그렇다고 중국이 WTO로 대표되는 세계화의 종말을 원하는 건 아니라는 분석이다. 중국은 2001년 WTO 가입 이후 총 무역액이 10배 이상 증가하는 등 지난 20여년 동안 무역자유화의 최대 수혜국이었다. 그리고 미국 유럽을 완전 대체할 방법도 없다.

미국 외교협회(CFR) 연구원 쭝위안 조 리우는 “중국이 확대하고 있는 양자간 FTA와 RCEP 네트워크가 미국·EU와의 무역마찰로부터 중국을 효과적으로 격리시킬 수는 없다”며 “2023년 중국의 무역감소에서 알 수 있듯 미국·EU와의 긴장으로 인한 무역손실은 다른 국가 및 지역과의 무역으로 쉽게 보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불확실한 미래가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 기업들은 무역분쟁을 피하기 위해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방법 중 하나는 미국 인접국인 멕시코를 활용하는 것이다. 훨씬 낮은 관세로 미국시장에 상품을 수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또 다른 방법은 생산기지를 자국과 가까운 곳으로 이전하는 ‘니어쇼어링’이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 대한 중국의 직접투자가 증가하는 이유다.

그러나 CFR 리우 연구원은 “FTA 덕분에 중국 기업들이 외국에 제조공장을 설립해 궁극적으로 미국과 EU로 수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하지만 미국과 EU가 중국인의 해외공장 소유에 대한 추가적인 제한을 포함하도록 법과 정책을 바꾼다면 중국의 공장 이전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