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글로벌 조세협정

2024-02-29 13:00:01 게재

다국적기업 대상 디지털세 … 미국 반대, 개도국 시큰둥

세계 유수 IT기업과 다국적기업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조세협정이 미국과 개발도상국들의 정치적 지지가 약화되면서 발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28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디지털세(매출 올린 곳에서 납세)와 법인세 최저한도(15%) 등 2가지 주요 내용을 골자로 한 글로벌 조세협정은 2021년 135개 이상의 국가들이 합의한 획기적인 진전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이를 주도했다. OECD는 올해 6월까지 조약의 최종문안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하지만 디지털세와 관련해 미국 공화당이 적극 반대하면서 비준과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 클럽인 OECD가 아닌 UN이 이를 주도해야 한다며 협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디지털세 협상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FT에 “퍼펙트스톰 상황이다. OECD는 성공 가능성이 전혀 없는 프로젝트에 갇혔다”며 “미국이 디지털세를 비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행할 수 없는 합의만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정부는 디지털세를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 조세조약을 비준하려면 미국 상원에서 2/3 이상(67표)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 의석수는 과반이지만 51석에 그친다. 미국 비준이 없다면 협정 발효가 어렵다. 현재 다국적기업 모회사의 40% 이상이 미국에 있다.

공화당 유력 대선후보이자 디지털세의 확고한 반대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올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유럽연합(EU) 한 관계자는 “관건은 선거가 끝난 후 미국이 이에 동의할 것인지 여부”라고 말했다.

디지털세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EU는 현재 브라질에서 개최중인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디지털세 불씨를 살리기 위해 노력중이다. FT가 입수한 G20 공동성명 초안에는 ‘2024년 6월 말까지 조약 서명을 목표로 다자간 협약에 합의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EU와 프랑스가 적극 요구한 ‘신속한 이행(swift implementation)’ 문구는 포함되지 않았다. 각국은 공동성명 내용을 협상중이며, 최종 문안은 변경될 수 있다.

한편 개발도상국들은 OECD가 아닌 UN이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UN 내 국제조세 실무그룹 설립을 추진중이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 조세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면 UN의 역할이 커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협상 관계자들은 “이 때문에 디지털세 6월 마감시한을 맞추기 위한 추진력이 더 약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각국이 개별적으로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프랑스 등 개별적으로 디지털세를 입법했던 국가들은 2021년 다자간 합의 도출을 위해 이를 유예하는 데 동의한 바 있다. 이미 캐나다는 지난해 자체적으로 디지털세를 도입했다.

네덜란드의 유럽의회 의원인 폴 탕은 “EU는 미국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2025년까지 이를 이행해야 한다는 데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EU는 자체적으로 디지털 서비스세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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