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뒤안으로 사라질 운명인가

2024-03-04 13:00:01 게재

‘종말’ vs ‘모든 연결의 중심’… 르몽드 “포화시장+혁신부족에 판매량 감소세”

지난달 말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 선보인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링. 사진 내일신문 고성수 기자
스마트폰 황금기가 끝나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프랑스 르몽드는 2일(현지시각) “포화상태인 시장에서 지난 15년 동안 큰 혁신이 없었기 때문에 신규 스마트폰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다”며 “게다가 새로운 세대의 커넥티드 디바이스(네트워크 연결기기)가 스마트폰의 자리를 잠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26~2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는 작고 가벼우면서도 강력하고 직관적인 새로운 디바이스가 대거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옷깃에 고정해 착용하는 ‘AI 핀’으로 이메일을 듣거나 전화를 걸 수 있다. 손가락에 끼우는 ‘스마트링’으로 건강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다. 귀에 꽂는 이어웨어(earwear)는 음성 및 음악 도우미로 사용할 수 있다.

미국에서 창업한 중국기업 ‘래빗’은 성냥갑만 한 크기의 휴대용 AI비서 ‘래빗 R1’을 선보였다. 이 기업 CEO 제시 리우는 “스마트폰의 형태는 현재 사용가능한 것 이상의 혁신을 이루기 어려울 정도로 진화했다. 때문에 다소 지루해졌다”며 “그래서 우리는 사용자들에게 재미있고 직관적인 기기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애플의 전 디자인디렉터 임란 차우드리, 전 소프트웨어 매니저 베타니 봉지오르노가 공동창업한 스타트업 ‘휴메인’도 비슷한 입장이다. 브로치처럼 달거나 옷깃에 부착할 수 있는 휴메인의 AI 핀은 스마트폰이 필요없게 되는 세상을 목표로 삼는다.

르몽드는 “키보드와 스크린의 시대는 지나가고 보다 자연스러운 모빌리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심지어 손바닥이나 다른 표면에 가상화면을 투사할 수도 있다”며 “필수품이 돼가고 있는 이같은 기기를 통해 사용자는 말을 걸면 바로 정답을 얻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스마트폰의 종말을 예견하기도 한다. 2022년 5월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한때 세계 1위 휴대폰 제조업체였던 노키아의 CEO 페카 룬드마크는 “2030년이 되면 분명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스마트폰은 더 이상 가장 일반적인 인터페이스가 아닐 것”이라며 “많은 것들이 우리 몸에 직접 내장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장 일반적인 인터페이스 아닐 것”

프랑스 전략예측연구소 ‘꽁뚜아르 프로스펙티비스트(Comptoir Prospectiviste)’ 연구책임자인 올리비에 빠롱은 “우리가 알고 있는 스마트폰이 멀지 않은 미래에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며 “스마트폰이 무엇으로 대체될지는 중요하지 않다. 반지나 팔찌 안경 렌즈 또는 생체역학적 임플란트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론 머스크의 스타트업 ‘뉴럴링크’가 지난 1월 28일 처음으로 환자에게 뇌 임플란트를 이식한 사실을 언급하며 “이것은 인간-기계 인터페이스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첫번째 단계가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머스크는 1월 말 “생각만으로 휴대폰이나 컴퓨터, 그리고 거의 모든 장치를 제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미국 리서치회사 IDC에 따르면 2023년 전세계 신규 스마트폰 판매량은 전년 대비 3.2% 감소한 11억7000만대였다. IDC 월드와이드 트래커 팀의 연구책임자 나빌라 포팔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은 2021년을 제외하고 2017년 이후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022년에는 전년 대비 약 12% 감소해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2023년엔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이후 감소세는 스마트폰 보급률 증가, 혁신의 부족, 그리고 최근에는 거시경제 상황의 악화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현재는 웨어러블 기기의 등장이 스마트폰 판매 부진의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독일 컨설팅회사 ‘뉘른베르크 소비자조사협회(GfK)’에 따르면 2023년 프랑스 휴대폰 판매대수는 전년 대비 13% 감소한 1360만대에 그쳤다. GfK의 통신컨설턴트인 폴 브리페유는 “2021년 1월 이후 신규 스마트폰 판매량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며 “2023년 9월 말까지 관찰된 판매량 감소는 인플레이션 이전의 2022년 실적 호조와 비교하면 잔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배경도 있다. 2023년 프랑스인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구매를 포기한 내구재 목록 조사에서 스마트폰이 1위를 차지했다. 때문에 약간의 흠이 있는 리퍼브 제품은 특히 보급형·중급형 부문의 신규 스마트폰 판매량을 잠식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판매되는 스마트폰 5대 중 1대가 리퍼브폰이다.

프랑스 시청각·디지털통신 규제기관(ARCOM)이 발표한 2023년 디지털사용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리퍼브 스마트폰은 스마트폰과 피처폰 등을 아우르는 전체 휴대폰 판매의 13%를 차지했다. 인도 시장조사기관 ‘모르도르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023년 전세계적으로 팔린 리퍼브 스마트폰은 566억1000만달러에 달했다. 2029년엔 754억달러어치가 팔릴 것으로 전망됐다.

신흥시장을 제외하면 전세계 스마트폰 보급률은 거의 정점에 달한 상황이다. GfK에 따르면 프랑스 가정 98%가 최소 1대 이상의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다 휴대폰의 평균수명도 길어지고 있다.

이는 제조업체가 제품군을 넓혀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IDC의 포팔은 “애플과 삼성 샤오미 화웨이 오포 등 주요 스마트폰 제조업체는 생태계를 조성해 소비자를 자사브랜드에 붙잡아두기 위해 여러 제품들을 시장에 출시한다”고 말했다.

제조사들, 혁신 압박에 다각화 나서

애플과 삼성은 스마트폰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2023년 처음으로 애플 브랜드가 1위로 올라섰다. 두 기업은 휴대폰을 넘어 다각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애플이 2015년 애플워치를 출시하자 삼성은 2018년 갤럭시워치로 맞불을 놨다. 이제 스마트링으로 전장을 옮기고 있다. 올해 1월 사전공개된 삼성 갤럭시링은 지난달 말 MWC에 다시 등장했다. 애플 스마트링은 올해 6월 ‘애플 세계개발자회의’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널리 보급된 스마트워치와 마찬가지로 스마트링도 성공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IDC 애널리스트 지테시 우브라니는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웨어러블시장이 형성된 지 10년이 지났고 어느 정도 통합이 이뤄졌지만 브랜드와 폼팩터(외형) 측면에서 여전히 성장잠재력이 크다”며 “오라(Oura) 노이즈(Noise) 보트(BoAT) 서큘러(Circular) 등 신생브랜드의 스마트링이 향후 여러 분기 동안 새로운 폼팩터를 주도하는 동시에 기존 브랜드에 혁신압력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IDC에 따르면 2023년 웨어러블 기기의 전세계 총 판매량은 전년 대비 6.8% 성장한 5억4300만대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안경이나 이어웨어 형태가 아니라 옷과 주머니 손목 손가락에 착용하는 웨어러블기기로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잊게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은 가정용 PC나 MP3처럼 소외될 운명일까.

구글 프랑스 하드웨어부문 이사인 장 필립 라두는 “스마트폰은 개인적이고 지능적이며 일관된 컴퓨팅 경험을 제공하면서 모든 것의 중심에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며 “휴대폰이 소외되지 않으려면 모든 개별요소와 동기화돼야 한다. 휴대폰은 AI를 중심으로 설계되고 더욱 지능적인 음성제어 기능을 갖춘 커넥티드 디바이스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리서치회사 ‘포레스터’ 애널리스트인 토머스 허슨은 “미래 스마트폰은 AI를 통해 인간의 육감이 될 것”이라며 “센서 및 브랜드 생태계와 결합해 인간의 요구를 예측하고 인간에게 더 풍부하고 맥락적인 몰입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6세대 폴더블 스마트폰을 출시할 예정인 삼성은 이미 새로운 갤럭시 S24, S24+, S24울트라 주문 증가에서 AI의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다. 삼성은 AI 덕분에 폴더블 스마트폰이 틈새시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GfK에 따르면 2023년 프랑스의 폴더블 스마트폰 판매량은 전년 대비 39% 늘어 10억유로를 돌파한 것으로 추산됐다. 미국 기술 전문매체 ‘디 인포레이션’에 따르면 애플도 폴더블 아이폰의 프로토타입을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AI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되살릴까. IDC는 “올해 스마트폰 시장이 3.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는 이전 전망치에서 -0.3%p 하향조정된 것이다.

르몽드는 “사람들은 여전히 휴대폰으로 전화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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