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채 시장 개혁안…변동성 잦아들까

2024-03-06 13:00:01 게재

중앙청산·딜러등록 의무화로 유동성·안정성 꾀해 … FT “세계 최대시장에 급격한 변화 예고”

26조5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채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풍성한 유동성을 자랑한다. 전세계 중앙은행들, 투자기관들은 거의 예외없이 미국채를 직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 시장에서 연방준비제도(연준)는 통화정책을 집행하고, 미국정부는 돈을 빌린다. 미국채 수익률은 전세계 자산들이 가격책정의 기준으로 삼는 무위험 이자율이다.

하지만 종종 문제가 발생한다. 지난 10년 동안 여러차례 이런저런 문제로 미국채 시장의 기능이 마비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 2019년 레포(환매조건부채권) 위기와 2020년 3월 미국채 시장붕괴는 연준의 긴급개입을 불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현지시각) “이 때문에 미국채 시장을 규제하는 미국 규제당국들은 큰폭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며 “연준은 레포 위기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재무부는 시장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변화를 꾀했다. 가장 적극적인 기관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라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SEC가 채택한 규정 중 가장 중요한 건 청산소를 통해 미국채를 거래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믿을 만한 제3자가 거래에 개입하면 투자자 보호와 감독이 강화되고, 담보를 통해 거래를 성사시키면 위기상황이 닥칠 때 연쇄적인 채무불이행을 방지할 수 있다는 논리다.

SEC의 새로운 규정은 미국채 현물거래의 경우 2025년 12월부터, 레포 거래는 2026년 6월부터 적용된다. ‘코얼리션 그리니치’의 시장구조 책임자인 케빈 맥파트랜드는 FT에 “중앙청산 제안은 국채시장에 기념비적인 변화다. 이를 시행하게 된다면 SEC에게 큰 업적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SEC는 지난달 ‘딜러 규정’을 통과시켰다. 이 규정에 따르면 초단타매매 트레이더와 일부 헤지펀드는 SEC에 딜러로 등록해 포지션과 거래활동을 현재보다 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또 더 많은 자본을 충당하고 금융산업규제협회(FINRA)와 같은 자율 규제기관에 가입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이같은 변화에 대해 미 재무부 금융시장 담당 차관보인 조쉬 프로스트는 “미국채 시장을 더욱 탄력적으로 만들어 전세계 가장 큰 유동성을 가진 시장으로 유지시킬 중요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뉴욕멜론은행 시장구조 책임자이자 전 뉴욕연방은행 국내시장 책임자였던 네이트 우르펠은 “개혁이 잘 실행된다면 10년 후 미국채 시장이 지금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유동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SEC의 위원장으로 미국채 시장 개혁 설계자인 게리 겐슬러는 FT에 “미국채 시장은 전세계에 달러의 지속적인 리더십을 촉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뢰할 수 있고 안전하며 쉽게 접근하고 거래할 수 있는 자산(미국채)을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하다. 영국 파운드화가 기축통화였을 때도, 그 이전 네덜란드가 국제금융 리더였을 때에도 그랬다. 이는 연준과 재무부, 그리고 SEC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채 시장 개혁해야 달러패권 지속”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청산소는 금융시장의 중요한 부분이다. 청산소는 구매자와 판매자 거래의 중간에서 양쪽으로부터 담보를 받아 현금과 유가증권을 원활하게 교환하도록 보장한다. 중앙청산소가 없는 경우 은행이나 대형 헤지펀드가 파산하면 이들과 거래한 상대방은 자산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레포 거래는 트레이더가 보유한 국채를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트레이더는 보유 자산을 완전히 청산하지 않고도 단기간에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미국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SIFMA)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프라이머리딜러(미국채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금융기관)가 보유한 미결제 레포 거래는 5조7000억달러에 달했다.

청산소 담보 게시 요건은 레버리지 상한선으로도 볼 수 있다. 미 재무부 산하 금융조사국에 따르면 현재 미청산 국채 레포 거래의 70% 이상이 거래 위험을 감당하기 위한 증거금 없이 두 당사자 간에 이뤄지고 있다. 때문에 리스크가 커진다.

예를 들어 은행이 미국채를 담보로 헤지펀드에 현금을 빌려줬는데, 헤지펀드가 환매거래를 불이행할 경우 은행은 담보를 매각해 돈을 회수하려 한다. 이때 국채가치가 하락한 상황이라면 은행은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레포 거래에 일부 현금 증거금을 도입하면 이러한 방식으로 대출을 시행하는 은행 및 기타 거래상대방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헤지펀드가 빌릴 수있는 금액은 줄어든다. 이는 헤지펀드가 주로 취하는 ‘베이시스 트레이드’ 전략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베이시스 트레이드는 국채 현물을 사들이고 선물에 매도 포지션을 취해 현-선물 간 괴리에서 수익률을 얻는다. 헤지펀드 업계는 일반적으로 현물을 매입할 때나 선물을 매도할 때 레포 거래를 이용해 대규모 레버리지를 일으킨다. 이들이 포지션을 청산할 때 국채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일으킬 수 있다.

베이시스 트레이드는 미국채 시장을 교란한 주범으로 악명이 높다. 2019년 9월 레포시장에서 은행간 하루짜리 대출금리가 장중 한때 10%까지 치솟는 일이 벌어졌다. 평소 2% 대 초반을 유지했던 레포 금리가 단숨에 10%까지 뛰자 뉴욕연방준비은행이 532억달러에 달하는 유동성을 긴급 공급하면서 패닉을 진화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도 미국채 수익률이 치솟으며 미국채 시장 유동성이 증발하는 위기상황이 연출됐다.

레포 거래를 활용한 레버리지는 100배가 넘는 엄청난 규모에 달할 수 있다. 규제당국은 여러 헤지펀드가 동시에 포지션을 청산할 경우 미국채 가격이 급락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SEC의 중앙청산 규정은 헤지펀드의 과도한 시장 레버리지와 그로 인한 베팅이 잘못될 경우 은행 등 거래상대방에게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다.

미국 대형은행의 한 임원은 “레버리지 제한이 없으면 은행은 사업을 포기해야만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모든 거래에 증거금이 부과된다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FT는 “SEC 등 규제당국은 시장을 더 안전하게 만들면 트레이더가 안심하고 거래해 국채시장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유동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또 담보가 뒷받침되는 청산거래의 경우 은행이 관련 충당금을 덜 쌓아도 된다. 이론적으로 은행이 국채 거래와 같은 사업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전했다.

“거래비용 높이고 거래량 감소시켜”

반면 이를 비판하는 측에선 SEC의 새로운 규칙이 거래비용을 높이고 거래량을 감소시켜 오히려 미국채 시장을 옥죌 것이라고 주장한다.

트레이딩회사 ‘DRW’의 공공정책·시장구조 책임자인 그레이엄 하퍼는 “거래 대상을 제한하거나 거래 경제성을 변화시키고 유동성을 감소시키는 상당한 비용을 추가하지 않는 청산소 해법이라면 괜찮다. 하지만 그런 해법은 ‘만약’에 불과하다. 시장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펀드사들의 협회인 ‘인베스트먼트 컴퍼니 인스티튜트’ 법률고문인 난 응웬은 “회원사들이 감당해야 할 운영상의 장애물, 기술적·법률적 부담이 많다”며 “SEC 규칙은 말보다 수레가 앞서가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헤지펀드업계 단체인 ‘매니지드펀드협회’ 회장 브라이언 코벳은 “청산소 규정과 딜러 규정은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근간인 미국채의 사모펀드 소유 및 거래 유인책을 변화시킬 것”이라며 “SEC 규칙은 모호하다. 투자를 저해하고 유동성과 시장효율성을 해치며 시장변동성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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