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에서도 ‘평화’ 지운다

2024-03-08 13:00:05 게재

한반도본부 18년만에 막내려

외교전략정보본부 신설키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7일 2024년 외교부 주요 추진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정부 들어 계속돼 온 ‘평화 지우기’가 통일부, 국방부에서 외교부까지 옮겨왔다. 지난 18년간 외교부에서 북핵 협상을 맡아오던 한반도평화교섭본부가 사라지는 대신 외교전략정보본부(가칭)가 신설된다. 장기간 북핵 대화에 진전이 없다는 이유로 협상을 담당하던 조직은 축소된다. 외교부는 7일 ‘2024년 주요정책 추진계획’에서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 실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조직 개편안을 관계부처 협의 후 시행 예정”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신설될 외교전략정보본부는 산하에 가칭 한반도외교정책국장·외교정보기획관·외교전략기획관·국제안보국장 등 4국장을 두게 된다. 한반도외교정책국이 과거 한반도평화교섭본부가 하던 일을 수행한다. 2국 4과 체제의 차관급이던 평화교섭본부가 1국 3과의 국장급으로 축소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한반도 업무에 전략과 정보, 국제안보 기능을 추가해 (한반도평화교섭본부를) 외교전략정보본부로 개편함으로써 한반도 문제를 보다 큰 맥락에서 접근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 10년간 상황이 변하면서 북핵 문제는 더 이상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만이 아니라 자금조달을 위한 사이버 범죄와 이에 대한 대응 등으로 다기화돼 왔다”고 말했다.

2006년 한시 조직으로 출발해 2011년 상설기구가 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의 조직이 축소되는 것은 달라진 북핵 외교 환경을 고려한 것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남·북한과 미일중러 등 한반도 주변국들이 대화를 통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진전시켜 간다는 6자회담 당시와 최근 상황은 많이 변했고 동력도 크게 떨어졌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가 북핵 협상보다는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한 대북 압박 수단 마련에 집중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상황 변화로만 설명하기엔 불충분한 측면도 다분하다.

윤석열정부 들어 통일부에서도 ‘평화’라는 단어를 여러차례 지운 바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통일부는 ‘평화·통일교육’이라는 표현을 ‘통일교육’이라고 수정했고, 조직개편을 통해 평화정책과를 위기대응과로 바꿨다. 심지어 ‘한반도국제평화포럼’으로 불린 행사명까지 ‘한반도국제포럼’으로 바꿔 개최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는 지적됐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시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정부에서 김영호 통일부 장관 부임이후에 통일부에서 ‘평화’라는 말을 다 빼고 있다”며 “이는 부적절한 통일의 처신”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평화라는 이름을 지우는 게 대통령의 뜻이냐, 아니면 장관의 뜻이냐”고 묻기도 했다. 조 의원은 그 근거로 △통일교육 기본방향 △통일부 훈령·예규·규정 △통일부 조직 직제 등에서 평화라는 단어가 다 빠지고 있다고 사례를 들었다.

같은 당 박홍근 의원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윤 대통령이 취임이후 남북관계 연설을 분석한 결과를 밝히며 ‘도발’이라는 단어는 67회로 ‘통일’(31회)보다 많이 언급됐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특히 윤 대통령 연설에서 평화가 260회 언급됐지만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짜 평화’(6회), ‘힘에 의한 평화’(5회) 언급이 ‘평화 통일’(3회), ‘한반도 평화’(5회) 보다 더 많이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윤 정부의 대북관이 북한을 증오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며 “‘전쟁 중에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외교 격언이 있듯이 교류와 대화의 창구인 윤 정부의 통일부가 대북 강경 기조에만 몰두하면 부처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국방부가 펴낸 ‘2022 국방백서’에서는 6년 만에 북한을 주적으로 다시 명기한 것은 물론이고 ‘한반도 평화’라는 표현 대신 ‘힘에 의한 평화’가 주요하게 등장했다.

결국 지난해 통일부와 국방부에 이어 올해 외교부에서도 조직개편을 명분으로 ‘평화’가 사라지는 것은 현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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