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없이 맞는 라마단에 초긴장

2024-03-11 13:00:00 게재

하마스, 동례루살렘 알아크사로 집결 촉구 … 이스라엘, 경찰 수천명 배치

10일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성전산으로 알려진 알 아크사에서 이슬람 성월 라마단 기간 동안 무슬림 신도들이 저녁 ‘타라위’ 기도에 참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휴전 합의 없이 이슬람 금식성월 라마단을 맞게 되면서 동예루살렘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주변국들의 휴전 중재가 무위로 돌아간 상태에서 종교적 의미가 극대화된 라마단이 자칫 확전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10일(현지시간)로 156일째 전쟁 중인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지난달 미국과 카타르, 이집트 등 중재국들과 함께 마련한 휴전안을 검토했지만 최종 합의도출에 실패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휴전 협상에 하마스만 참여하고 이스라엘은 아예 불참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측이 인질 중 생존자와 석방 대상자, 인질 석방의 대가로 풀어줄 팔레스타인 보안 사범 등의 명단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협상단도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하마스 측은 전쟁으로 인질을 억류하고 있는 일선 부대와 접촉마저 어려운 상황이라 이스라엘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하마스는 휴전 조건으로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철군과 영구 휴전 논의 개시 등을 내걸었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 소탕과 인질 구출, 가자 지구발 안보 위협 해소 등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철군도 휴전도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렇게 2주 가까이 시간을 허비하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전쟁 상태로 올해 라마단을 맞게 됐다. 카타르와 이집트 등 중재국들은 라마단 기간에도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상대로 휴전을 위한 설득을 계속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라마단 시작 후 이틀 만이라도 휴전할 수 있도록 제안키로 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이슬람력 9번째 달 라마단의 시작은 각국의 이슬람 중앙성원에서 초승달을 육안으로 관측한 뒤 결정하기 때문에 나라별로 금식을 시작하는 날짜에 차이가 있다. 팔레스타인 라마단은 10일 저녁 초승달이 관측됨에 따라 11일 일출과 함께 시작된다.

이슬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도 전날 저녁 메카에서 초승달이 관측됐다면서 11일이 라마단의 첫날이라고 밝혔고, 시리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이라크 등도 같은 날 금식성월이 시작된다고 공식 발표했다. 수니파 이슬람권은 통상 종주국 사우디의 공식 발표를 기준으로 라마단을 지킨다.

이란을 위시한 시아파는 보통 수니파보다 하루 늦게 라마단이 시작하며 이번에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오는 12일부터가 라마단이라고 선언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아시아 국가도 10일 저녁 초승달 관측에 실패하면서 12일이 라마단 첫날이 된다.

국제사회가 라마단을 우려하는 이유는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동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 3대 성지 알아크사 사원 때문이다. 35에이커(약 14만㎡) 크기의 이 성지는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가 공통으로 성스럽게 여기는 곳이다.

요르단은 3차 중동전쟁 후에도 이 성지의 관리권을 유지키로 했지만 치안유지 권한은 이스라엘에 넘어갔다. 그러면서 양측은 당시 성지 규칙도 만들었다.

성지에서 기도는 이슬람교도만 할 수 있고, 유대교도의 기도와 예배는 ‘통곡의 벽’으로 불리는 예루살렘 구시가지 서쪽 벽에서만 할 수 있다. 기도하지 않는 비이슬람교도의 성지 방문은 허용되는데, 라마단 마지막 열흘간은 예외다.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만든 조항이지만 현실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주민과 아랍계 이스라엘 주민은 라마단 기간 신앙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사원의 문을 걸어 잠그기도 하고, 이스라엘 경찰은 질서유지를 이유로 제약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간 유혈 충돌이 빚어지고, 무력 대치가 반복됐다.

더욱이 지난 2022년 극우세력을 등에 업은 베냐민 네타냐후가 총리로 복귀하면서 시작된 이스라엘 극우 정치인의 성지 도발은 아랍권 전체를 들끓게 했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특히 알아크사 사원 경내에 들어가 성지 규칙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고, 팔레스타인이 미래의 독립 국가 수도로 여기는 동예루살렘의 주인은 유대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는 전쟁까지 치르고 있어 약간의 자극적인 언사나 행동만으로도 걷잡을 수 없는 충돌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라마단까지 휴전에 합의하지 못하면 아주, 아주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생존 위기에 직면한 하마스도 라마단을 대이스라엘 저항의 계기로 삼고, 팔레스타인 주민과 이스라엘내 아랍계 결집과 아랍권 국가의 대이스라엘 저항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하마스는 성명을 통해 라마단 기간 팔레스타인 안팎의 모든 전선에서의 대결과 시위, 알아크사를 향한 집결을 촉구했고, 이스라엘 전시 내각은 라마단 대비 태세를 점검한 뒤 알아크사 사원 주변 골목에 수천 명의 경찰을 배치하기도 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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