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멕시코, 무역전쟁까지 갈까

2024-03-14 13:00:21 게재

영국 이코노미스트 “미국 무역적자 급증”

지난달 발표된 무역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멕시코가 중국을 제치고 미국의 제1 수출국이 됐다. 2002년 이후 처음이다. 멕시코의 대미 수출은 꾸준히 늘어 지난해 4760억달러에 달했다. 반면 중국 수출은 4270억달러로 급감했다.

양국의 위상이 역전된 건 미국이 중국과 탈동조화하면서 인접한 멕시코로 공급망을 옮기면서다. 또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의 3국 자유무역협정인 ‘USMCA’가 2020년 발효되면서, 자동차부품과 의료장비, 농산품 등 멕시코의 대미 수출이 쉬워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13일 “하지만 멕시코와 중국의 관계가 계속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는 상황”이라며 “중국기업들이 멕시코 시장으로 속속 진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중국이 멕시코를 대미 수출의 우회로로 삼고 있다는 의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멕시코 싱크탱크 ‘IMCO’의 아나 구티에레즈는 “전보다 다소 오래 걸리지만 중국 수출기업들은 결국 같은 곳(미국시장)에 다다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이같은 우회전략을 장려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12월 중국 고위관료들은 “최종제품 자체보다 반제품을 수출하는 게 보다 높은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멕시코는 미국에 진입할 수 있는 매력적인 교두보다. USMCA에 따르면 북미산 부품이 일정비율 이상 포함되면 상품교역에 관세를 물리지 않는다.

멕시코 공식 세관자료에 따르면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지속적이진 않다. 하지만 미국 측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멕시코의 수입량이 과소집계되고 있다고 의심한다. 즉 멕시코가 중국에서 수입하는 양을 대폭 감추고 이를 다시 미국에 수출한다는 것이다.

철강과 알루미늄이 주요 표적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 캐서린 타이 대표는 “멕시코가 제3국들로부터 수입하는 철강·알루미늄과 관련해 투명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멕시코는 중국산 철강 일부에 최대 80% 관세를 매긴 바 있다. 하지만 미국측은 여전히 불만이다. 관세를 매기는 것과 이를 관철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 통상분야 비영리기구인 ‘미국 번영을 위한 연합(CPA)’의 제프 페리는 “USMCA는 사실상 미국-중국-멕시코의 3국 무역협정이 됐다. 중국은 멕시코를 통해 막대한 물량을 미국으로 수출한다”고 주장했다.

전기차 역시 미국의 우려가 크다. 중국 전기차 평균가격은 대략 미국산의 절반이다. 그리고 중국은 전세계 전기차 생산물량의 절반 이상을 만든다. 고율관세가 없다면, 중국 전기차가 미국시장을 휩쓸 것이라는 예상도 무리는 아니다.

USMCA는 불공정 보조금이나 시장관행에 대해 제동을 걸 조항이 있다. 하지만 다른 사안의 경우엔 막을 수 없다. 멕시코는 중국 자동차기업들에게 우회로를 제공한다. USMCA 원산지규정엔 중국 부품도 포함되는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부품을 멕시코에서 조립해도 원산지를 멕시코로 표기할 수 있다.

멕시코엔 이미 대규모 자동차 제조산업 생태계가 구축돼 있다. 중국이 이 생태계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특히 미국과 가까운 멕시코 북부지역이 타깃이다. 비야디(BYD)는 지난달 멕시코에서 연간 15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2022년 멕시코에 대한 중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5억달러에 달했다. 미국 싱크탱크 ‘인터아메리칸 다이얼로그’의 마거릿 마이어스는 “중국기업들이 멕시코에서 정밀제조 비중을 크게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관심이다.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품의 경우 유럽연합(EU)과 일본의 방식을 따를 수 있다. 낮은 관세를 적용받는 물량엔 한도가 있다. 그 이상의 물량은 고율관세를 부과한다. 트럼프행정부는 2019년 멕시코의 철강·알루미늄 수출에 대한 관세를 조건부 해제한 바 있다. 멕시코의 수출물량이 크게 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전기차는 더 까다롭다. 일각에선 중국을 전기차 공급망에서 완전히 배제하길 원한다. CPA의 제프 페리는 “미국과 무역을 하고 싶은 나라가 있다면, 중국을 위한 중간기착지 역할을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엄격한 원산지규정, 강제이행 체제가 필요하다. 멕시코 소재 중국 공장들이 생산한 제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까다로운 문제다.

트럼프정부 때 USTR 대표를 지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첫번째 단계로 중국의 최혜국대우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중국의 대미 수출품 전반의 관세가 자동적·단계적으로 인상된다. 멕시코국립자치대 교수 엔리케 두셀은 “그럴 경우 국제교역시스템이 와해될 것”이라며 “미국은 ‘내 규칙을 따르지 않는 자는 나의 적’이라고 말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올해 말 트럼프가 대선에 당선된다면 멕시코에 가혹한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중국과의 무역은 물론 불법이민 문제도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트럼프가 무역적자를 극히 싫어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미국의 대 멕시코 무역적자는 1520억달러로, 전년 대비 17% 상승했다.

2026년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는 USMCA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트럼프는 이 협정을 서명한 장본인이지만, 이를 계속 존중한다는 보장은 없다. 아니면 협정 연장을 멕시코에게 큰폭의 양보를 끌어낼 지렛대로 쓸 가능성도 있다. 그는 “재선에 성공할 경우 모든 교역국에 1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장담한 바 있다. 현재 USMCA 규정상 멕시코와 캐나다에겐 부과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 역시 계속 유지될지는 의문이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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