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슈머 “네타냐후는 평화의 장애물”

2024-03-15 13:00:01 게재

미 상원 원내대표 초강경 발언 파장 … “이스라엘 새 선거 실시가 유일한 길”

척 슈머 미국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6일 워싱턴 DC 미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민주당 주간 오찬 후 언론과 대화하고 있다. 그는 14일 벤자민 네타냐후 총리의 가자지구 분쟁 대처에 대해 미국 고위 관리로는 가장 강도 높은 비판을 하며 이스라엘에 새 선거 실시를 촉구했다. AFP=연합뉴스
미국 상원 집권당 원내대표가 공개 연설을 통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교체를 촉구해 파문이 일고 있다. 집권 여당 중진의원 발언이라는 점에서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고전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현재 기류와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척 슈머 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14일(현지시간) 상원 연설에서 “베냐민 네타냐후가 길을 잃었고 가자지구 평화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에 새로운 선거를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미 상원의 첫 유대인 다수당 대표인 슈머는 이날 40분간의 연설을 통해 작심한 듯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네타냐후) 총리가 극우 극단주의자들의 연합에 가담했다”며 “그 결과 그는 가자지구의 민간인 희생을 너무 용인하려 했고,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또 “이스라엘이 왕따가 된다면 이스라엘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슈머 원내대표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공격이 있은 불과 며칠 뒤 이스라엘을 방문했고, 12월에는 상원에서 연설을 통해 “이 나라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본 적이 없는 뻔뻔하고 광범위한 반유대주의”라고 비판하는 등 자신을 이스라엘 정부의 강력한 동맹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작심하고 현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한 것이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과거에 얽매인 통치 비전에 의해 지금 억압당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슈머는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반대해 온 네타냐후가 미국이 추진하는 두 국가 해법을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 중 하나라고 진단하면서 “네타냐후가 자신의 정치적 생존이 이스라엘의 최선의 이익보다 우선시되도록 내버려 둠으로써 길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슈머 원내대표는 미국이 이스라엘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는 없지만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정부의 비전과 방향에 대한 신뢰를 잃은 이 시기에 새로운 선거는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건강하고 개방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조기 선거를 통해 네탸냐후를 축출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일단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슈머의 발언에 대한 언급을 거부하면서 백악관은 일시적인 휴전을 하는 데 가장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커비 조정관은 “우리는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갖추도록 하는 동시에 민간인 사상자를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데 계속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슈머의 이번 연설은 당장 공화당 의원들의 반발을 불렀다.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슈머 발언 직후 상원 회의장에서 “이스라엘은 동맹국처럼 행동하는 동맹국을 가질 자격이 있다”며 “외국 관측통들은 이에 무게를 두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공화·LA)도 슈머 원내대표의 연설이 “부적절하다”고 비판하면서 “이 지역에서 우리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 생존을 위한 실존적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미국 지도자가 이스라엘 정치에서 그렇게 분열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대인인 민주당 상원의원 브라이언 샤츠(하와이)는 슈머의 발언을 칭찬했다.

그는 X(구 트위터)에 게시한 글을 통해 “슈머 원내대표의 대담하고 역사적인 연설”이라며 “나는 그가 우연히, 또는 고통 없이 이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에서는 슈머의 이번 경고가 점점 더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이스라엘에 반발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민간인 피해를 줄이도록 네타냐후 정부에 대한 공개 압박을 강화하는 가운데 나온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슈머 발언이 나온 이날 미국 정부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겨냥한 추가 제재를 발동했다. 국무부는 모세스 팜 등 단체 2곳과 즈비 바 요세프 등 3명을 서안지구의 평화와 안보, 안정을 저해하는 행동을 했다며 제재 대상자 명단에 올렸다고 밝혔다. 제재 대상은 미국 내 자산 동결, 미 입국 비자 제한, 미 금융 기관 접근 차단 등에 처해진다. 미 국무부는 지난해 12월에도 서안지구에서 폭력 행사에 관여한 일부 이스라엘인에 대해 미국 입국 금지 조치를 취했고, 지난달에도 정착촌과 관련해 이스라엘인을 제재한 바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민간인 대량 학살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지지해 온 바이든 행정부가 선거 악영향을 우려해 정책 전환을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번 슈머 대표의 강경 발언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을 것으로 관측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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