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마이너스금리 해제 후 금융시장 주목

2024-03-18 13:00:02 게재

"일본은행, 내일 금융정책 전환" … 도쿄증시 하락·국채금리 상승, 엔화 자금 움직임 주시

일본은행이 내일(19일)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해제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기 위해 단기 정책금리를 마이너스 0.1% 수준으로 유도하는 통화정책을 8년여 만에 수정하는 조치다. ‘아베노믹스’의 상징인 대규모 완화정책을 큰 틀에서 바꾸는 것이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정책 전환을 미리 반영해 주가하락과 국채금리상승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행은 급격한 금리상승에 따른 충격을 방어하기 위해 국채 매입 등 양적완화를 지속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번 터진 둑을 막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일본에 이른바 ‘금리가 있는 세상’이 도래하면서 벌어질 변화의 방향과 폭이 주목된다.

일본 디플레인션 탈출 선언하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6일 “일본은행이 18~19일 열리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이날 회의를 통해 단기 정책금리를 0.0~0.1%로 인상하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6년 2월부터 시작한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종료될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시중은행 등 금융회사가 중앙은행 당좌계좌에 맡긴 지급준비금에 부여하는 금리로 이 가운데 일부에 -0.1% 금리를 적용해 ‘패널티 금리’로도 불린다.

일본은행은 또 장단기 금리 차이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수익률곡선통제정책(YCC)도 폐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장기금리의 핵심지표인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 상한을 1.0% 수준에서 관리하는 정책을 없애는 조치다. 금융완화정책의 또 다른 축인 상장지수펀드(ETF)와 부동산투자신탁(REIT)의 신규 매입도 중단할 전망이다. 실제로 일본은행은 지난 11일 도쿄증시에서 닛케이지수가 일시적으로 2.3% 이상 하락했지만 추가적인 ETF 매입에 나서지 않았다. 일본은행은 지금까지 닛케이지수가 2% 이상 하락하면 EFT를 사들여 주가를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

일본은행이 통화·금융정책의 전환에 나선 데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물가상승세를 확인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달 “디플레가 아닌 인플레 상태”라고 말했고, 스즈키 준이치 재무상도 15일 “소비자물가는 완만히 상승 중”이라며 “정부로서는 현재 디플레 상황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일본의 물가흐름은 최근 상승세가 한풀 꺾여 디플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공포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창민 한국외국어대 융합일본학부 교수는 “일본 소비자물가가 하반기 1%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번에 디플레를 탈출하지 못하면 일본은 ‘잃어버린 40년’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일본 경제에서 디플레이션은 공포의 대상이고, 여전히 완전한 탈출을 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일본 총무성 발표에 따르면 일본의 올해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2.0% 상승했다. 이는 2022년 3월(0.8%) 이후 1년 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본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상반기까지 3%대를 보이다 하반기 이후 오름세가 둔화해 5개월 연속 2%대를 유지하고 있다.

예상 뛰어넘는 5.28% 임금상승률

디플레이션 우려가 말끔하게 가시지 않았음에도 일본은행이 정책전환에 나선 데는 올해 임금인상률이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일본노총(렌고)은 지난 15일 중간집계를 통해 올해 임금인상률이 5.28%로 1991년(5.66%) 이후 3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상승률(3.80%)에 비해 1.48%p 높다. 기본급과 정기승급분 등 호봉제적 성격이 강한 일본의 임금체계에서 기본급은 3.70% 올라 지난해 대비 1.37%p 상승했다. 아사히신문은 “기본급과 정기승급분을 포함한 1인당 평균 임금인상액은 지난해보다 4625엔 많은 1만6469엔(약 14만8000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대기업과의 격차는 여전하지만 중소기업의 임금인상률도 4.42%로 32년 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비정규직 임금인상률도 시급 기준 6.47% 올라 전년 대비 0.56%p 웃돈다. 요시노 토모코 일본노총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노사가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인식을 함께했고, 사람에 대한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점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행은 올해 임금인상률이 예상치를 웃돌면서 인건비 상승에 따라 서비스요금도 올라 물가와 임금의 선순환 구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우에다 총재는 지난 12일 참의원 재정금융위에 출석해 “이번 주 추가적인 데이터와 정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종합적인 판단을 하고 싶다”며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이 어느 정도 잘 돌아가고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에다 총재의 국회 답변 이후 일본노총이 예상을 넘어서는 임금인상률을 발표하자 일본은행이 자신감을 가졌다는 분석이다. 일본은행 고위 관계자는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올해 임금인상률 결과는 금융정책 수정에 신중한 금통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부 안에서도 3월 인상론이 힘을 얻는 분위기다. 재무성 간부는 “4월까지 기다릴 필요없이 3월에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 주변에서도 “정책전환 시기는 일본은행에 맡기고 있다”고 했다.

마이너스금리 해제해도 당분간 완화유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6일 “일관되게 금융완화를 지속해 온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해제하면 세계 금융시장의 자금 흐름에도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금융시장에서는 일본 금리정책의 변화가 가져올 파장을 주시하고 있다. 이미 일본 금융시장에서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가장 먼저 주식시장이 반응했다. 도쿄증시에서 닛케이지수는 지난 주 3일 연속 하락하는 등 지난 15일 종가 기준(3만8707.64)으로 역대 최고점을 찍었던 지난 4일(4만109.23)에 비해 3.5% 하락했다.

채권시장에서도 국채금리가 상승했다. 지난 15일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는 0.785%로 올해 초(0.617%)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2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0.20%를 넘어서기도 했다. 재무성이 이날 시행한 3개월물 단기 재정증권 입찰에서 최고 낙찰금리도 8년 9개월 만에 플러스로 전환했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국채금리 상승을 조만간 있을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해제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했다. 다만 환율은 16일 달러당 149엔대를 유지하는 모습이어서 아직 뚜렷한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키우치 타카히데 노무라종합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15일 보고서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돼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우위”라면서 “만약 2% 물가수준이 지속되면 중립금리 수준도 2%를 넘어서 정책금리는 비교적 빠르게 오를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한 이후에도 정책금리를 당분간 제로금리 수준에서 묶어둘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에다 총재도 지난달 이후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해도 완화적 금융환경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국채 매입을 당분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것도 시장금리의 급격한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다만 이러한 조치가 시장의 금리상승 기대감을 얼마나 안정화시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메리츠증권 이승훈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통화정책 전환과 관련 “GDP대비 일반정부 채무가 260%에 달하는 조건에서 단기간 내 장기국채 금리 상한을 1.0% 이상 용인하기는 어려운 환경”이라며 “인플레가 2%대를 넘고, 명목GDP가 매년 3~4% 정도 증가한다는 믿음이 생겨야 1.0% 이상으로 용인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창민 교수는 “일본은행이 향후 장단기 금리를 관리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면서도 “주가와 환율의 하락은 당분간 불가피하고, 환율이 달러당 130엔 아래로 내려가면 엔화 투자자금이 일본으로 역류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지난해 일본의 대외증권투자에 의한 흑자는 808억달러(약 110조원)로 전년보다 17.5% 증가했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배당과 이자소득 등을 엔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엔저에 따른 환차익 효과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막대한 규모의 엔화 투자자금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주목된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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