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론 잠재운 미경제, 문제는 정치리스크

2024-03-18 13:00:03 게재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보호주의·포퓰리즘은

경기침체 부를 리스크”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미국이 경기침체 직전에 있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하지만 2023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3% 가까이 상승하며 21세기 들어 가장 호황을 누린 해로 기록됐다. 그리고 계속 예상을 뒤엎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주요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을 1%로 예상했다. 하지만 최근 그 예상치는 2배 높아졌다. 노동시장도 왕성하다. 실업률은 25개월 연속 4% 미만으로 50년 만에 가장 긴 기간 동안 4% 아래를 유지하고 있다. 2019년 이후 미국경제는 실질 기준으로 약 8% 성장했다. 이는 유로존보다 2배 이상, 일본보다 10배 이상 빠른 속도다.

미국의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하면 성장세는 더욱 놀랍다. 미국 경제는 지미 카터 행정부 이후 가장 급격한 금리 상승을 견뎌냈다. 코로나19 팬데믹, 중국과의 무역전쟁 격화, 기후변화 대처 등은 공급망과 노동시장, 소비자 선호도를 함께 재편했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의 전쟁은 지정학적 긴장을 악화시켰고 글로벌 무역 시스템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켰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그럼에도 미국경제가 놀라운 성과를 거둔 핵심 이유로 GDP의 26%에 달하는 팬데믹 부양책을 꼽았다. 이는 경제선진국들 평균의 2배가 넘는 수치다. 팬데믹 부양책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겼지만 동시에 빠른 경제성장도 가능케 했다. 코로나 위기가 지나간 후에도 미국정부는 차입을 지속했다. 지난해 미국 재정적자는 GDP의 8%에 육박했다. 덕분에 금리가 상승하는 동안에도 소비수요를 뒷받침했다.

강력한 수요는 공급 증가로 충족됐다. 미국 노동력은 2019년 말보다 4% 더 많다. 노동참여도가 늘어난 덕분이기도 하지만, 주된 이유는 이민 증가다. 외국계 인구는 440만명 증가했다. 불법 입국자까지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인력이 미국 내로 유입됐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미국의 유연한 노동시장 덕분에 늘어난 노동인구가 생산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방대한 내수시장도 대외무역 의존도를 낮춰 부정적 요인의 유입을 차단했다. 2010년대 셰일석유 붐으로 미국은 에너지 순수출국이 됐다. 치솟는 에너지 가격은 유럽인들을 강타했지만 미국엔 오히려 총체적 이익이 됐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문제는 성장의 각 요소에 더이상 의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미국의 최근 성공에 기대어 추가부양책으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며 “하지만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공식적인 예측에 따르면 올해 미국은 국방비보다 부채이자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할 전망이다. 더 많은 차입은 향후 재정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동시에 미국 주요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 모두 미국의 성장잠재력을 해칠 포퓰리즘과 보호주의 본능을 갖고 있다. 먼저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할 경우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전면적으로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킬 수 있다. 트럼프는 또 불법이민자을 대량추방하겠다고 공언했다. 미국 노동력 공급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2021년 미국 비정규직 이민자는 전체 노동력의 약 5%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든도 마찬가지다. 이달 초 연두교서에서 정부조달에 미국산을 우선하겠다는 보호주의 정책을 공언했다. 또 주택은 물론 초콜릿 등 각종 제품·상품의 가격을 통제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적자를 줄이기 위해 기업에 대한 세금을 늘리겠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이코노미스트지는 “트럼프는 무역과 이민이 미국을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바이든은 대기업에 깊은 불신을 품고 있다”며 “둘 다 미국의 강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이유를 자신들의 잘못된 개입주의 정책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 부의 궁극적 원천인 자유시장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미국은 기업과 노동자들이 혁신하고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면서 번영을 누려왔다. 차기 대통령이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미국경제는 결국 침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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