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잡겠다며 ‘재탕·땜질’ 정책 내놓은 정부…실효성 논란

2024-03-19 13:00:08 게재

과일값 대책에만 예산 1500억 또 투입

수입 더 풀고, 관세 낮추고 할인 지원

“효과 없고 업자 특혜성 정책” 지적도

유류세인하·식품업계 압박도 단골메뉴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4월 종료 예정인 유류세 인하 조치를 추가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사과·배 등 가격이 급등한 과실류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체리·키위 등 수입과일 공급 확대를 추진하고 농축산물 할인지원을 확대한다. 가공식품 물가 상승과 관련해선 최근 원재료 가격 하락을 지렛대로 유통·식품업계에 가격 인하 압박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하지만 과일값 안정에만 1500억원의 예산을 또 투입하는 이번 대책 효과에 대해선 비관론이 더 많다.

1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전날 정부가 발표한 물가안정대책은 모두 과거대책을 연장하거나 확대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올 초부터 먹거리 물가 인상에 대응해 수입은 더 풀고 관세를 낮추고 민간 할인행사에 정부예산을 더 투입하는 대책을 반복해왔다. 1분기가 끝나는 시점에도 가격이 더 오르니 예산을 더 투입하겠다는 것이 대책의 골자다. 식품업계에 가공식품 가격인하를 압박하는 정책 역시 수년째 반복했지만, 효과가 없었던 대책이다. “총선을 앞두고 물가민심이 나빠지니 재탕대책으로 보여주기식 발표를 한 것”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무섭게 오르는 물가 지난달 과실 물가 상승률과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간 격차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판매 중인 사과와 배. 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근본대책 없이 재탕정책 발표 급급 = 정부는 이날 농축산물 물가안정을 위해 납품단가 지원(755억원), 할인지원(450억원), 과일 직수입(100억원), 축산물 할인(195억원) 등에 1500억원을 추가 투입한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 설 명절을 앞두고 수요가 높은 농축산물에 대해 690억원의 할인을 지원한 바 있다. 그래도 가격이 오르자 2~3월 농축산물 할인지원에 230억원을 더 투입했다.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 예산지원인 셈이다. 그러나 납품단가와 할인 지원, 과일 수입 확대는 농산물 가격 폭등을 저지하는 데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

실제 정부 스스로도 사과 등 가격은 가을 햇과일 출하 전까지는 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수진 농식품부 식량정책실장은 브리핑에서 “지난해 사과는 전년 생산량의 30%가 감소했는데 2000년 이후 최대 감소폭”이라면서 “다만 사과 등 햇과일이 본격 출하되는 가을 이전까지는 가격 강세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수입과일 지원해 사과·배 가격인하? = 수입 확대를 통한 과일 가격 하락 유도가 제대로 효과를 낼지도 의문이다. 올해 유난히 국내 과일 가격이 비싼 이유는 냉해 피해와 탄저병, 일조량 감소 등으로 생산량이 30~40%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산 감소는 해외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수입 과일인 바나나의 경우, 생산국 작황도 좋지 않아 도입원가 자체가 상승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도입원가 상승은 대체 과일 수입을 통한 농산물 가격 안정 효과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실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전날 수입 오렌지(미국 네이블) 상품(上品)은 10개 평균값이 1만6178원으로 1년 전 1만5578원보다 600원(3.9%)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키위나 바나나 같은 수입과일이 사과·배 등에 얼마나 대체효과가 있는지도 검증되지 않았다.

기존 대형 마트에서 전통시장 등으로 확대하기로 한 할인지원 효과도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박수진 실장은 “전통시장 대부분이 아직 정산 시스템이 구비되지 않아 할인 지원을 광범위하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유통구조 개혁, 기후변화 대응해야 = 최근 들썩이는 석유류 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는 다음 달 말 종료 예정인 유류세 인하를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매번 반복되는 조치로, 신선감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재정 투입을 반복하는 것이 오히려 물가 안정에 부정적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격이 비싸면 수요가 줄어 가격이 내려가는 것이 시장이다. 하지만 정부의 반복된 지원정책으로 수요와 가격 왜곡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농산품 가격 상승의 원인은 이상기후 등으로 인한 생산량 저하인데, 소비가 줄어들지 않으면 가격은 계속 높게 형성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과일 등 가격이 더욱 오를 것이란 소비자심리도 물가안정에 부정적이다. 최근 유통업자들이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공급량을 조절하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결국 먹거리 물가 안정을 위해선 땜질식 가격통제정책이 아니라, 농산물 유통구조를 바꾸고 기후변화에 적극 대비하는 등 거시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가격할인 정책이 중장기 해법이 될 수는 없다”면서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농업자체가 구조적으로 바뀔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므로 유효한 중장기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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