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있어서 숨쉬는 공기가 만들어졌다

2024-03-27 13:00:02 게재

커피 한잔 물발자국 130리터 … ‘수입식량 물발자국 계산하면 물부족 국가’ 우려도

태양계에는 여러 행성들이 있는데 왜 지구에만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제일 큰 차이는 숨쉬는 ‘공기’다. 금성은 대기압이 약 90에 이르고 이산화탄소가 대기의 97%를 차지한다. 화성은 대기압 0.01 미만에 대기의 95%가 이산화탄소다. 반면 이 두 별 사이에 있는 지구는 1기압에 대기중 이산화탄소는 0.04%에 불과하다.

지구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이렇게 적게 분포하는 건 ‘물’이 있기 때문이다. 물이 있어야 남세균 같은 원시생명체가 생겨날 수 있다. 남세균은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광합성 생물로 35억년 동안 햇빛을 먹고 살아왔다. 지구 대기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이산화탄소를 탄산칼슘(석회암) 형태로 고정하고 우리가 숨쉴 수 있는 산소를 배출했다.

지상식물이 햇빛에서 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는 것도 남세균의 도움이다. 초식동물이 장 속 발효 박테리아의 도움을 받아 식물의 섬유질을 분해하듯 식물은 남세균을 몸속으로 끌어들여 광합성을 한다. 식물 속으로 들어간 남세균은 수억년을 보내면서 ‘엽록체’라는 이름의 식물세포 속 소기관이 되었다.

지구처럼 표면에 물을 가득 담고 있는 행성은 매우 드물다. 태양에 가까운 금성은 대기온도가 평균 470℃로 뜨겁고 화성은 –30℃ 정도로 차갑다. 금성의 물은 모두 수증기 상태로, 화성의 물은 얼음 상태로 존재한다. 반면 평균기온 15℃인 지구에는 액체 상태의 물이 풍부하게 존재한다. 지구를 ‘물의 행성’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물의 날 슬로건 ‘평화를 위한 물 이용’

매년 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이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리우회의(환경 및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 의제21(Agenda21)에서 처음 제안해 1993년 3월 22일이 ‘제1회 세계 물의 날’로 지정됐다. 올해 세계 물의 날 UN의 공식 슬로건은 ‘평화를 위한 물 이용’이다.

전세계적으로 물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강과 호수가 마르고 지하수 자원도 줄어들고 있다. 거의 모든 대륙, 대부분의 주요 대수층이 빠르게 소모된다. 인도와 중국, 미국 북아프리카 이란 중동에서는 지하수 고갈이 이미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전세계 지하수의 1/4이 인도에서 사용된다. 그 지하수의 90% 가까이가 농작물을 키우는 데 들어간다. 심각한 펌프질 경쟁 때문에 농부들은 점점 더 깊이 관정을 뚫어야 한다. 대부분의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몇년 많은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도시로 이주했다.

지하수 남용은 인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지하수위가 낮아지면서 생태적으로 소중한 민물습지 절반 가까이가 사라졌다. 전세계 민물고기 1만여종 가운데 20%는 멸종되거나 멸종위기에 이르렀다. 지구의 물은 사람들만 쓰는 독점상품이 아니다. 2000년 8월 하와이 최고법정은 “물을 사용할 경우 생태적 한계 안에서 공익을 최대한 추구해야 하며, 생태계보호단체는 물 배급에서 상업적 이용에 우선한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기후재난에 대한 변화와 적응이 시급한 시기인데 우리나라에선 4대강사업 이후 시대착오적인 하천관리가 여전히 되풀이된다. 매년 봄부터 늦가을까지 낙동강 유역에는 독성 녹조가 창궐해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 하천관리가 환경부로 일원화된 뒤에도 ‘생태하천 조성사업’이란 이름으로 하천정비를 하는 낡은 관행이 이어진다. 사업부서만 국토부에서 환경부로 바뀌었을 뿐이다.

‘물은 생명이다’라고 하는 이유

지구에 있는 물의 총량은 14억㎦ 정도다. 지구 표면을 약 2.7㎞ 깊이로 덮을 수 있는 양이다. 그러나 이 물의 97.5%는 바닷물이다. 육상에 사는 동식물은 한방울도 마실 수 없다. 나머지 2.5%가 민물로 약 3500만㎦ 정도 된다. 지구 표면을 약 70m 깊이로 덮을 수 있는 양이다.

그렇지만 민물의 69.55%는 빙하와 만년설, 영구동토층에 얼음으로 갇혀있어 이용하기 어렵다. 나머지 30.45% 가운데 30.06%는 지하수다. 호수나 하천의 물은 민물의 0.39%에 불과하다. 다행히 태양이 바닷물을 증발시켜 끊임없이 비와 눈으로 내려준다. 육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 물로 살아간다. ‘햇님이 하느님이요, 뭇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땅으로 떨어진 빗물이 다시 바다로 가는 길을 ‘강’이라고 한다. 비나 눈의 90%는 바다에 떨어지고 10%만 땅으로 떨어진다. 지상으로 떨어진 빗물의 약 65%는 수증기로 증발해서 다시 대기 중으로 돌아간다. 35% 정도가 지하수가 되거나 지표면을 흐르는 강물이 된다. 물의 여행은 모두 바다에서 하늘, 하늘에서 땅, 강물을 거쳐 다시 바다를 오가는 과정이다.

바다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가장 빠른 여행자다. 강물이 된 빗방물도 최단코스 여행자로 분류할 수 있다. 아무리 긴 강이라도 한두달이면 바다에 이른다. 그러나 큰 호수를 거쳐가는 강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겨울에 찬바람을 맞고 4℃까지 온도가 떨어진 물은 제일 무거운 상태가 되어 호수 바닥으로 깊이 가라앉는다.

이 물방울은 깊은 호수 바닥에서 몇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높은 산 바위틈으로 깊이 들어간 지하수는 몇백년, 몇천년 동안 지하에 머무르기도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긴 시간을 여행하는 물방울은 남극대륙 내륙의 만년설 지대에 떨어진 눈송이일 것이다. 그 눈송이가 다져져 빙하가 되면 1년에 몇 센티미터씩 흘러서 바다로 간다. 이 눈송이가 바다에 닿으려면 최소 수십만년을 기다려야 한다.

1년에 지구에 떨어지는 비나 눈의 양은 약 50만㎦ 정도다. 전세계 연평균 강수량은 733㎜이고 여기서 수증기로 날아가는 증발산량 467㎜를 뺀 실제 지표강수량은 266㎜ 정도다. 우리나라의 강수량은 연평균 1245㎜로 전세계 평균의 1.7배 정도 된다.

여기서 증발산량 523㎜를 뺀 실제 강수량은 722㎜, 전세계 평균 지표강수량의 2.7배 정도다. 홍수 때 바다로 흘러가버리는 38.6㎦를 빼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민물의 양은 33.7㎦ 정도다. 물 1㎦는 1기가톤이다.

지하수가 전체 하천 유량 50% 공급

지하수가 된 빗물은 수백년 동안 천천히 흘러서 바다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지표로 솟아나는 지하수는 메마른 시기에 강과 호수를 채운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이 미국의 54개 하천을 조사한 결과, 지하수가 전체 하천 유량의 50%를 공급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나라 4대강 발원지도 모두 지하수가 솟아나는 샘이다. 한강(검용소) 낙동강(황지) 금강(뜬봉샘) 섬진강(팔공산 서쪽계곡 용천수) 등이다. 미시시피강(미국) 니제르강(기니~나이지리아) 양쯔강(중국)도 지하수에서 발원한다.

물 사용량 급증으로 전세계 많은 강들이 바다에 이르지 못한다. 파미르고원에서 발원하는 아무다리아강이 밀 농사용 관개용수 취수로 마르면서 이 강의 종착지인 아랄해는 대부분 바닥을 드러냈다. 콜로라도강(미국) 갠지스·인더스강(인도) 황하(중국)와 같은 큰 강들도 예외가 아니다. 황하는 1년 중 바다에 이르지 못하는 날이 200여일이나 된다.

우리나라는 강수량이 풍부하고 하천 평균유량의 25% 정도만 취수한다. 그래서 물부족 국가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러나 식량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수입식량의 물발자국을 모두 계산하면 물부족 국가로 봐야 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물발자국’ 대표적인 제품은 쇠고기

수입식품 가운데 ‘물발자국’이 큰 대표적인 제품은 ‘쇠고기’다. 1㎏에 1만5415리터나 된다. 소 1마리는 자라는 동안 곡물 1300㎏과 목초 7200㎏을 먹고 24톤의 물을 마신다. 또 축사 청소 등에 마리당 평균 7톤의 물이 들어간다.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 연구에 따르면 1㎏ 기준 물발자국은 △쇠고기 1만5415리터 △양고기 1만412리터 △돼지고기 5988리터 △염소고기 5512리터 △닭고기 4335리터 △치즈 3178리터 △버터 5553리터다. 곡물과 채소의 물발자국은 △밀 1827리터 △쌀 1670리터 △옥수수 1222리터 △망고 1800리터 △바나나 790리터 △감자 287리터 등이다.

의외로 물발자국이 큰 식품은 ‘커피’다. 커피 원두 1㎏의 물발자국은 1만8900리터나 된다.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커피나무를 키우고 열매를 수확하고 커피콩을 볶아 적도를 넘어 운반해야 한다. 커피 한잔 마시는 데 필요한 물은 250밀리리터(㎖)가 아닌 130리터다.

남준기 기후재난연구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