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능성식품 시장 중소업체 난립…안전성 논란

2024-04-02 13:00:18 게재

1700개 업체 육박, 자본금 1억엔 미만 74%

신고만으로 제조·판매 가능 … 시장 급성장

고바야시제약 ‘붉은누룩’ 섭취 5명 사망 파문

식약처 “일 여행시 구매 주의”

일본 기능성식품 시장이 영세업체의 난립과 안전성 관리 소홀로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특정 제약회사가 만든 건강기능성식품을 장기간 섭취한 후 5명이 사망하고, 150여명이 입원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도쿄상공리서치가 지난달 29일 소비자청에 등록된 자료를 바탕으로 집계한 결과, 기능성식품을 만든다고 신고한 업체는 전국적으로 1671개사에 달했다. 이 가운데 22개사가 도산 또는 휴·폐업한 것으로 집계됐다. 등록돼 있는 업체 1671개사 가운데 약 74%는 자본금이 1억엔(약 8억9000만원) 미만인 영세한 중소기업으로 드러났다. 최근 문제가 된 고바야시제약이 만든 ‘붉은누룩’도 관련 법령에 따라 기능성표시식품으로 분류돼 당국의 심사나 허가가 필요없이 소비자청에 신고만 하는 것으로 판매가 가능하다.

기능성식품은 신고제로 관리하기 때문에 6개월마다 소비자청에서 요구하는 관련 정보를 갱신해야 한다. 하지만 등록된 제품의 15%는 관련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도쿄상공리서치는 밝혔다. 이 단체 관계자는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신고한 데이터베이스의 신뢰성이 크게 의심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기능성식품은) 신고제이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영세기업도 시장참여가 비교적 쉽다”면서 “사업자는 관련 정보의 신속한 보고 및 갱신의무를 성실히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영세업체가 난립하는 데는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규제를 완화해 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본 정부는 아베 정권 때인 2015년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중소기업도 식품산업에 보다 쉽게 참여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로 관련 규제를 풀었다. 건강과 관련한 식품의 분류에서 ‘기능성표시식품’을 떼어내 당국의 심사와 허가없이도 제조와 판매가 가능하도록 했다.

최근 일본에서 5명이 사망하는 등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고바야시제약이 제조한 건강성기능식품 ‘붉은누룩’. 사진출처 고바야시제약 홈페이지

이에 앞서 1991년 관련 규제를 도입한 ‘특정보건용식품’은 국가가 임상시험 결과 등을 기반으로 안전성과 기능성을 심사하고 허가를 받도록 했다. 하지만 2001년 ‘영양기능식품’을 별도로 분리해 “특정한 영양분을 일정량 포함한 식품의 경우 심사 및 허가를 필요로 하지않는다”고 규제를 완화했다. 이후 현재와 같은 기능성식품도 분리해 추가적인 규제완화로 이어졌다.

이처럼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관련 시장은 급속히 팽창했다. 후지경제에 따르면, 기능성식품 시장규모는 2020년 특정건강용식품 시장을 추월했고, 지난해는 전년 대비 19% 성장하면서 6865억엔(약 6조1000억원) 규모로 커졌다. 관련 상품수도 지난해 말 기준 약 6700개가 시장에 출시돼, 특정건강용식품(약 1000개)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신고제에 의해 식품의 안전성 관리가 기업의 자율에 맡겨지면서 최근 관련 업계는 자체적인 검증에 나서는 모양새다. 특히 중견기업 이상의 규모가 큰 업체는 발빠르게 나서고 있다. 연간 매출이 240억엔(약 2150억원) 수준의 중견 식품업체로 기능성식품도 판매하는 ‘칸로’ 관계자는 “소비자 우려가 나오고 있어 원료공급처에 안전성 등에 대한 확인작업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밝혔다.

일부 기능성식품을 판매하고 있는 일본코카콜라는 “법적 기준을 준수하는 것과 함께 매일 제조공정을 관리하면서 제품의 안전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정기적으로 성분을 분석하고 있는 기업도 적지 않다. 일본건강·영양식품협회는 지난 2019년부터 웹사이트에서 이를 취합해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고바야시제약도 매출이 조단위가 넘는 대기업이라는 점에서 관리에 허점을 보이고 있다. 고바야시제약은 1886년 나고야에서 창업해 현재는 오사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전통이 있는 기업이다.

이 회사 홈페이지에서 공개한 재무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만 1734억엔(약 1조5400억원)에 달한다. 영업이익은 257억엔(약 2290억원)으로 영업이익률도 14.9%에 달한다. 전통있는 대기업에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더 충격적이고, 비슷한 사건이 재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일본 국민은 우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의 뒷북 대응도 논란이다. 올해 1월 처음 의심 환자가 나오고, 2월에도 여러명의 증상이 동일한 양상이었는데도 정작 당국에 신고한 때는 3월 하순에 이르러서다. 이 기간 고바야시제약의 ‘붉은 누룩’은 계속 시중에 유통됐고, 소비자들은 이 제품을 지속적으로 섭취했다. 일본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제조업체가 피해 발생시 보고하도록 의무화한 성분에 이 제품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기능식품의 제조와 유통 및 사고발생시 대처 등 전반적인 문제가 드러난 셈이다.

우리 정부도 일본 여행시 관련 제품을 구입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이번에 문제가 된 제품은 국내에 공식적으로 수입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지만 여행객이 개별적으로 구입해 반입했을 가능성은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식품안전나라’ 홈페이지에서 해외직구상품에 대한 안전정보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해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한편 일본 언론에 따르면, 현재까지 붉은누룩 제품의 섭취후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5명으로 집계됐다. 입원 환자도 150명을 넘어섰고, 관련 부작용으로 병원 상담을 한 사람도 10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이번 사태와 관련 사망 등의 원인에 대해 아직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만 푸른곰팡이에서 생성되는 천연화합물인 ‘푸베룰린산’의 강한 독성이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NHK 등 일본 언론은 전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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